RICE, STANFORD, OKLAHOMA 방문기 (2)

일요일 저녁 휴스턴을 출발한 뒤 자정이 넘어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한 나는 택시를 타고 팔로알토의 호텔에 다다랐다. 서늘한 캘리포니아의 여름은 학생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내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이튿날 낯익은 거리를 지나 스탠포드 대학으로 향했다. 멋있는 가로수 길과 고풍스런 건물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캠퍼스... 삼년 전 안식년 기간동안 방문했던 곳이라 내게는 익숙한 곳이었다. 라이스 대학에서부터 14년 동안 쉬지 않고 가르치던 나는 첫 안식년을 스탠포드에서 꿈같이 보냈었다. 그때 Rick Schoen 과 시작했던 공동연구를 이번에 마무리 지으려고 방문한 것이다. 릭은 UC Berkeley 에서 나의 지도교수였는데 지난 23년의 세월동안 여러 곳에서 만나며 서로의 가족과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릭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은 등주부등식 문제인데, 평면에서처럼 극소곡면에서도 같은 둘레를 갖는 곡선 중 최대 넓이를 에워싸는 것은 원임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학위논문을 완성한 뒤에 처음 쓴 논문의 주제였다. 학위논문 이후의 첫 논문은 내가 독자적 연구자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징표여서 내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학위를 받은 후 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찾아보았었다. 그중에서 내 호기심을 가장 끈 것은 릭이 극소곡면 강의시간 중 언급한 미해결의 문제 중 등주부등식 문제였다. 릭 자신도 몇 해 전 이 문제에서 부분적인 진전을 이뤘던 것이다. MSRI 에서 포스트닥으로 있는 동안 나도 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하였다. 그 이후 나는 여러 논문을 썼지만 이 등주부등식 문제에 관한 호기심에서 해방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이 문제는 나를 사로잡고 있었지만 매번 나를 좌절케 했던 것이다.

그런데 1999년과 2001년 홍콩과 버클리에서 라이스 대학의 마이크가 극소곡면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으로서 곡면을 두개의 평면 영역으로 대체하는 인상적인 강연을 하였었다. 나는 이 방법을 극소곡면의 등주부등식에 적용할 수 없을까 하고 그 가능성을 찾아보았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스탠포드에서의 안식년 도중 인디애나 대학에서 열린 미국 수학회에 가서 마이크의 강연을 들은 뒤 다시 가능성을 타진하였을 때는 한 가닥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릭과 이 방법의 의미심장함을 확인한 뒤 우리는 이 문제를 공동 연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지난 이년간 우리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어서 이제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마지막 한두 단계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첫날 점심은 릭, David Hoffman, Brian White 와 들었다. 점심 대화는 정치 이야기부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역 철수, 북한의 핵문제, 부시 대통령, 힐러리 클린튼, 콘디 라이스, 특별검사 켄 스타 등등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미국 국민은 어째서 이렇게 세계 정치에 관심이 많은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릭은 한국 국민의 반미감정에 대해 내게 물어보았고 미군 장갑차 사건도 알고 있었다. 젊은 세대에 반미감정이 꽤 있다고 말하니까 인섭(나의 큰 아들)이도 그러냐고 물었다. 그런데 릭은 한국이 이라크에 파병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미국, 영국에 이어 3260 명이나 되는 대부대를 보냈는데도 국제적으로 별로 알려져 있지 않는가보다. 한편 데이비드는 원래 매사추세츠 대학에 있었는데 그만두고 MSRI 에 있다가 지금은 스탠포드에 형식적인 적만 두고 자유롭게 수학연구를 하며 살고 있다. 그는 워낙 부유해서 직업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의 아내의 불만은 매년 가는 휴가의 장소가 항상 수학 학회가 열리는 곳이라는 데 있단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수학을 하며 휴가를 즐겨야 진정으로 쉴 수 있다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이튿날 점심은 릭, Pengzi Miao 와 들었다. 펭지는 릭이 이년 전 배출한 제자인데 현재 UC Santa Barbara 에 재직하고 있다. 그는 내가 왜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갔느냐고 소상히 물었다. 모두 미국에 남는 중국 유학생 출신의 입장에서 보면 궁금했으리라. 한편 릭은 말하길 자기가 배출한 서른 명의 제자 중에서 내가 가장 해석학을 덜 쓰는 기하학을 한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하였다. 자기가 애써 해석학 쪽으로 이끌었는데도 내가 기하학 쪽으로 갔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던 카메라를 가리키며 나는 사진을 찍듯이 주로 눈으로 보는 수학을 하는 체질이라고 말하였다. 스탠포드의 한 교수에게 학생이 많지 않은 이유를 릭에게 물으니 그 교수는 학생들에게 너무 부드럽게 대해서 자신이 없는 학생만 그에게 생겨서 그렇다고 나름대로 특이한 이유를 대었다. 라이스의 한 수학교수가 그의 아들이 미국에서도 유명한 갑부가 된 이후로는 수학과에 나타나지 않고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그랬더니 릭이 자기는 부자가 된다면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고 연구실만 얻어서 수학연구를 계속하겠다는 말을 하였다. 나보고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릭이 물었다. 재미있는 질문이어서 이후로 혼자 즐겁게 곰곰 생각해보곤 하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릭과 토론을 하였다. 그동안 이메일로만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니 답답한 점이 없지 않았으나 이날은 모처럼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어서 후련했다. 이번 주 동안 남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서로 기원하였다. 그리고 녹초가 된 채로 나는 호텔로 돌아갔다.

릭은 그동안 우리의 연구 성과에 관하여 여러 군데에서 강연하였다. 현재 우리의 아이디어로 등주부등식 문제가 풀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셈인데, 릭의 말인즉 자기는 미리 장담한 뒤 쫓기는 가운데 연구하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펭지가 전하기를 릭이 UC Santa Barbara 에서 강연을 시작할 때 내 이름 CHOE 를 먼저 적고 앞뒤에 S 와 N 을 추가하여 자기 이름 SCHOEN 을 나타내서 청중을 웃겼다고 한다.

다음날 저녁 릭과 그의 아내 Doris Fischer-Colbrie, 데이비드와 함께 싱가포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였다. 전채는 매우 좋았으나 주 요리는 그에 못 미쳤다. 이 자리에서 도리스는 릭이 우리의 연구문제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하니까 자기도 덩달아 잘 못 잔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나도 열심히 해서 그녀로 하여금 편히 잠을 자게 해주겠다고 도리스에게 위로의 말을 하였다. 데이비드는 지난 반년동안 수시로 릭에게 우리 연구의 진척상황을 물었다고 한다. 그도 우리의 연구방법을 자기의 연구에 이용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나는 릭과 데이비드에게 내가 지난 이십여 년 간 가장 많이 생각한 문제는 등주부등식 문제와 Meeks 의 예상이라고 말하였다. 데이비드도 믹스의 예상을 오랫동안 풀려고 노력했다고 내게 밝혔다. 그래서 나는 등주부등식 문제를 풀게 되면 한 다리를 뻗고 자게 될 것이고, 믹스의 예상도 풀 수 있다면 그때부터 두 다리를 뻗고 푹 자게 될 것이라고 웃으며 얘기하였다.

스탠포드에서 나는 릭과 닷새간 집중적으로 토론하였으나 뚜렷한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았으나 여전히 희망은 잃지 않았다. 우리의 아이디어는 매우 아름답고 문제의 접근방법은 간단명료한데 단지 따져봐야 할 경우의 가지 수가 복잡할 뿐이라고 우리는 파악하였다. 이전처럼 계속 이메일로 연구대화를 할 것을 릭과 약속하고 금요일 아침 나는 스탠포드를 떠났다. 산호세 공항으로 향한 차 안에서 릭은 왼손에 커피 컵을 들고 오른 손으로 운전하며 나와 계속 수학 이야기를 하였다. 아마도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바쁘게 계속 수학을 해야 할 것이리라.


계속 (오클라호마 방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