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E, STANFORD, OKLAHOMA 방문기 (3)

산호세 공항을 떠나 덴버를 거쳐 오클라호마 시티 공항에 도착하니 Walter Wei 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의 초청으로 나는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강연하기로 예정된 것이다. 주행거리가 21만 킬로나 돼서 털털거리는 그의 차 구형 도요다 캄리를 타고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지방도로를 거쳐 노만으로 향했다. 곳곳에는 원유를 캐는 기계가 천천히 펌프질을 하는 모습이 보였고 넓은 풀밭에선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끝없는 평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인디안의 말로 빨간 사람의 땅이라는 뜻의 오클라호마는 텍사스의 북쪽에 인접한 주로서 미국의 중남부에 위치해 있다. 오클라호마 주의 넓이는 남한의 두 배가 되지만 인구는 1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오클라호마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눈물의 여로(Trail of Tears) 로 알려진 체로키 인디안 족의 강제이주 역사이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영국 편을 들었다가 미국 남동부로 밀려나는 등 박해를 받은 체로키 족은 백인문화와 정치제도를 받아들이며 자구책을 마련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조지아 주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체로키 족은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만 여명의 체로키 족은 1838년 겨울 1500여 킬로를 강행군한 끝에 오클라호마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주하는 동안 기아, 추위와 병에 의해 7천여 명이 죽게 되어 눈물의 여로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주한 곳에서 석유가 발견되어 이들은 다시 오클라호마의 변방으로 쫓겨났다. 미국 역사상 가장 슬픈 기록 중의 하나인 이 강제이주를 잊지 않기 위해 1987년 미국 의회는 아홉 개 주에 걸친 3500 킬로의 National Historic Trail 을 제정하였다.

노만은 오클라호마 대학이 소재한 인구 8만의 소도시이다. 한적하지만 살기에는 쾌적한 이 도시는 학생이 공부하고 교수가 연구하기에는 매우 알맞은 곳이다. 대학의 미식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8만 명 정원의 축구장을 먼 곳에서 온 골수팬들이 꽉 채운다고 한다. 오클라호마 대학은 1890년에 설립되었는데 주립대학으로서는 미국에서 역사가 가장 짧지만, 지질학과 석유 엔지니어링, 그리고 출판 분야에서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대학교이다. 그리고 US News & World Report ranking 에 의하면 수학과 대학원은 올해 미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원 과정중 하나로 진입했다고 한다. 이 대학의 캠퍼스는 넓으면서 매우 아름답다. 상원의원을 지낸 총장 David Boren 은 추진력을 발휘하여 기록적으로 많은 기부금을 거둬들였고, 원예학에 관심이 많은 그의 부인은 대학 캠퍼스를 아름답게 가꾸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월터는 버클리에서 도리스, Mike Anderson, Bill Meeks 처럼 H. B. Lawson 의 제자였다. 내가 월터를 처음 만난 것은 15년 전 라이스 대학을 떠나기 직전 오스틴에서 열린 학회에서였다. 내가 한국의 대학으로 옮긴다고 말하니 그는 동경, 타이뻬이처럼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곧 오를 것이니 내게 부동산 투자를 하라고 조언하였었다. 그리고 그가 그때 내게 알려준 Leon Simon 의 정리는 나중에 내가 확장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번에 만나니 그는 내가 한국에서도 연구를 활발히 해왔으니, 그때 한국에 돌아가기로 한 것이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작년에 베이징 대학에서 내가 대학원생들을 위해 12시간의 집중강연을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그는 내게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세 번의 특강과 한번의 콜로퀴엄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월터는 수학자를 농구선수에 비긴다. 수학이 젊은이들만 하는 게임이라며. 그러나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어느 저명한 수학자는 그의 최대 업적을 쉰여덟 살에 이루었고, 미국의 유명대학에는 지금도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하는 육칠십 대의 교수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연구를 더 이상 계속하지 않거나 다른 분야로 바꾼 여러 수학자에 대해서도 그와 함께 얘기해 보았다. 그들은 나름대로 개인적인 사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분야의 문제를 풀건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풀건 수학의 문제를 푸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터이다.

월터가 얘기하길 Taubes 와 Kirby 등은 위상수학의 여러 정리를 알았지만 Donaldson 만이 이 정리들을 종합하여 4 차원 공간의 특이한 미분구조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수학자들이 Ricci flow 와 Harnack 부등식 등을 알았지만 Perelman 만이 Poincare 예상을 풀었다고 하였다. 페렐만의 논문을 읽고 Hamilton 은 "내가 왜 진작 이것을 깨닫지 못했지?" 라고 말했다고 한다. 종합적인 개관능력과 예리한 통찰력을 겸비해야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나 보다. 도날드슨이 특이한 미분구조를 발견했을 때 같은 문제를 풀려고 힘쓰던 수학자들은 낙심 끝에 택시 운전사로 직업을 바꿨다고 월터는 농담을 하였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캠퍼스는 조용하여 나는 강연준비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캠퍼스를 거닐어보았다. 점심 들러 이곳저곳 둘러보다 들어간 레스토랑은 흔히 보아온 곳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어쩌면 미국의 깊은 곳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자그마하나 웨이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곳이었다. 색다른 풍의 장소에서 미국 맛이 물씬 풍기는 음식을 들며 오클라호마를 느껴보고자 하였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월요일은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전날까지는 매우 조용했던 캠퍼스에 그동안 어딘지 숨어 있었다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 같이 학생들로 붐비었다. 교정에 활기가 넘쳐흘렀다. 역시 학교에는 학생이 있어야 하는 법. 수학과에는 한국학생이 모두 여섯 명 있고 23년이나 재직 중인 이경배 교수가 계시다. 이 교수님은 예순 둘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자주 흥미로운 연구 문제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신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경배 교수님은 오클라호마 대학 수학과를 이끌어가는 몇몇 교수의 일원이시다. 덕분에 노만에는 연구년 차 방문하는 한국 수학자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강연을 해야 했다. 첫 강연은 Ray Preserving Metric 에 관해, 둘째 강연은 유클리드 공간에서의 상대적 등주부등식, 셋째는 리만 다양체에서의 상대적 등주부등식, 그리고 마지막 강연은 콜로퀴엄으로서 극소곡면의 등주부등식에 관한 것이었는데, 네 가지 모두 지난 3년 동안 얻은 결과들이었다. 첫 강연이 끝난 뒤의 저녁 식사에는 한국 학생들과 그 부인들이 몇몇 참석하였다. 이들과 즐겁게 얘기하다보니 24년 전 나의 대학원 유학시절이 새삼 떠올랐다.

둘째 강연 중에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유클리드 공간에서의 상대적 부등식과 소볼레프 부등식에 관해서는 오클라호마 대학의 한 교수가 나보다 2년 먼저 논문발표를 했었다. 그러나 그의 논문에는 결함이 발견되어 저널에 간행되지 못하였다. 청중에 있던 그는 내가 발표하는 도중, 나의 공저자중 한명이 자기가 이전에 학회에서 발표할 때 자기의 아이디어를 얻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오래전에 이 문제에 관해서 연구를 시작했었고, 나와 공저자의 아이디어는 그의 것과 판이하게 다른 것이라고 그에게 납득시켰다. 강연 후 그는 이 문제로 좌절을 심하게 하여 내 강연 중 오해를 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그에 못지않게 이 문제로 좌절감을 맛보았었다. 이 문제의 역사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나는 미국 과학재단 연구비 심사를 하게 되었는데 심사대상은 내가 잘 아는 수학자였다. 그는 연구비 신청서에 볼록 영역 바깥에 있는 극소곡면의 정칙성에 관한 연구를 제시하였다. 이에 자극받아 나는 볼록 영역 바깥에 있는 극소곡면의 등주부등식 문제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이 문제를 나의 한 제자가 풀어내어 그의 학위논문이 되었고, 곧 이어 나는 볼록 영역 바깥에 있는 영역의 상대적 등주부등식 문제를 그에게 제안하였다. 그는 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하였다. 그 이후 나 스스로도 이 문제에 관해 연구해 보았으나 역시 부분적인 진전밖에 못 이루었다. 그러던 차에 4년 전 MSRI 학회에서 우연히 만난 스페인 수학자 Manuel Ritore 와 공동연구를 시작하였고 우리는 결국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이 논문을 저널에 제출한 뒤 뜻밖에도 결함이 발견되어 그 실망감은 무척 컸었다. 둘이서 끙끙대던 도중, 미해결 부분에 관한 전문가 Mohammad Ghomi 를 2년전 인디애나 학회에서 만나고는 그에게 공동연구를 제의하였다. 그는 보름 내에 풀어내겠다고 공언하였으나, 그도 결국 일년 넘어 고전하다가 작년에야 완전히 해결하였다.

셋째 강연에는 둘째 강연보다 청중이 집중을 하고 질문도 많이 했다. 그리고 마지막인 네 번째 강연 차례가 되었다. 이 강연은 콜로퀴엄이어서 나는 일반적인 청중이 제일 흥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되는 극소곡면의 등주부등식을 주제로 택하였다. 먼저 이 문제에 관해서 지난 90년간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해결의 역사에 관해서 소상히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강연의 후반부에 릭과 내가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구상하고 있는 아이디어에 관해서 설명하였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과제에 관해 강연하기는 마치 청중이라는 손님에게 미처 익지 않은 과일을 대접하는 것 같았다. 강연의 말미에 나는 릭에게서 들은 어느 야구팀 감독의 얘기를 꺼냈다. "It's not over until it's over." 그러나 우리는 이 연구에 대해 매우 희망을 가지고 있으며, 가까운 장래에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하며 내 강연을 끝냈다.

오클라호마에서의 일주일을 끝으로 빡빡하며 사연 많던 스무날의 연구방문 일정을 마감하였다. 그 어느 출장 보다 다채로운 일정이었다. 이경배 교수의 차로 노만을 떠나고 조그만 비행기로 오클라호마 시티를 출발, 휴스턴 공항에 도착하였다. 동경 행 비행기가 세 시간 지연되었다. 스무날 동안 쌓인 피로를 풀며 기다리는 동안 나는 출장 전 읽던 소설 서머셋 모옴의 '달과 육 펜스'를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고갱의 삶과 관련이 있는 이 소설에서 주식 중매인이었던 주인공은 화가가 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한다. 오로지 창조하고자 하는 광적인 정열에 휩싸인 그는 주변 인물과 스스로의 고통에 아랑곳 하지 않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데만 몰입한다.

창조란 무엇이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욕구는 과연 무엇인가? 아마도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멋있는 논문을 쓰고 싶어 하는 수학자의 마음과 비슷한 욕구이리라. 나에게는 아직도 풀고 싶은 수학 문제가 많이 있고, 앞으로 쓰고 싶은 논문도 적지 않다. 문제를 풀고 논문을 쓰면서 창조의 기쁨을 느끼고 진리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학문의 벗들과 마음의 교류도 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나는 아파트 현관문 암호를 잊어버렸다. 기다리던 가족과 재회의 즐거움을 나눴다. 아빠와 같이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이 아빠와 함께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아내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2005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