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E, STANFORD, OKLAHOMA 방문기 (1)


2005년 여름방학은 중국 항조우
학회와 싱가포르 학회 참가,
그리고 미국의 세 대학 방문으로
매우 분주하게 보냈다.
이중 세 대학에서의 스무날은
다양하고 뜻 깊은 하루하루였다.
이때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
이 글을 적어본다.

라이스 대학은
내가 UCSD 와 MSRI 에서
2년간
Postdoctor 로 지낸 후
1988년부터 이태 동안
가르쳤던 곳이다.
1990년 포항공대로
옮기기 위해
귀국의 짐을 쌀 때
내가 언제 라이스를
다시 방문하게 될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열다섯 해가 흘렀다.


그런데 올해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둘째 아들(기섭)이
라이스 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아들 입학의 기쁨 못지않게
나의 라이스 방문의 감회는
오래전부터 나를 들뜨게 하였다.
그러나 둘째가 슬하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사실 앞에서 아내는 쓸쓸해하였다.
드디어 8월 8일 아들과 나는
휴스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7년 전 바로 이날 우리 가족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휴스턴으로 이사했었다는 기억을 되살리며.

오랜만에 본 휴스턴의 거리는 낯설었고, 렌트카를 몰며 예약한 호텔을 찾던 나는 쌩쌩 달리는 미국차 속에서 오랫동안 헤매었다. 마치 처음 유학 온 이방인 학생처럼. 이튿날 우리가 옛날 이용하던 은행에 가서 아들의 계좌를 개설하였다. 이 은행은 이름도 바뀌었다. 그러나 담당직원은 옛 고객과 그의 아들을 따뜻이 맞이하였다.
은행 옆에 라이스 캠퍼스가 있었다. 매우 반가왔다. 캠퍼스의 아름다운 건물사이를 누비며 아들의 사진을 찍었다. 17년전 이 캠퍼스를 다닐 땐 별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젊음의 불확실함 때문이었으리라. 지금 나는 세월 덕분에 쌓은 여유를 즐기며 캠퍼스를 거닐고 있었고, 아들은 짜릿한 기대감과 막연한 불안감이 뒤섞인 속에 이 곳에서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수학과를 찾아갔다. 그동안 학회에서 가끔 만났던 옛 동료 Bob Hardt 와 Mike Wolf 가 반가이 맞이하여 주었다. 밥은 내가 자기 연봉의 일부를 지불하게 됐다고 조크를 하였고, 마이크는 아들에게 자기 연구실을 집이라 생각하고 어려울 때마다 찾아오라고 격려하였다. 밥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결국 수학 얘기에 접어들었고 한 문제에 관해 깊이 있게 논의하였다.

밥과 마이크의 요청으로 준비해간 강연(상대적 등주부등식)을 하였다. 장소는 내가 Geometric Topology 를 즐겨 가르친 강의실이었다. 그때 학생 중에는 벌써 듀크 대학에서 정교수가 된 사람도 있다. 밥이 나를 소개할 때 나는 며칠 후 라이스를 떠나지만 나의 아들은 라이스에 학부생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아들은 내 수학강연을 듣고 너무 단조롭다며 조크를 덧붙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하였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마이크는 막상 조크를 하면 재미없다며 다시 빼라고 할 것이란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자기애들은 우리 애와 다르다며, 자기 딸이 말하길 "아빠 강연은 정말 멋졌어요,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라고 한단다. 수학자의 가족은 가지각색이다.

다음날 기하그룹이 매주 한번씩 갖는 점심식사가 있었다. 각자 좋아하는 점심을 사와서 수학과의 휴게실에서 식사하며 수학을 포함한 잡다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다. 방학 중인데도 여섯 명(밥, 마이크, 학생 셋, 나)이 모였다. 수학을 일상에서 재미있게 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밥, 마이크와 나는 각자의 자식 얘기를 하였다. 그리고 극소곡면 위 라플라시안의 고유값에 관한 나와 Soret 의 최근 연구결과를 이야기 하였더니 나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점심을 들며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짧은 강연을 하였다.














그 다음날 아들과 나는 휴스턴에서 300 킬로 떨어진 산안토니오로 특별한 여행을 하였다. 거기는 우리 가족의 호스트 패밀리였고 오랜 친구인 마크와 조앤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이다. 24년 전 아내와 나는 유학을 떠날 때 당장 묵을 숙소에 대한 별 대책 없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밤늦게 도착했었다. 그 때 마크와 조앤은 마중을 나왔고 그 후 일주일간 우리는 그들의 집에 머물며 그들의 각별한 도움으로 아파트를 구하고 은행계좌를 열고 헌 가구를 샀다. 그리고 매해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우리의 생일날 등 기회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두 집을 오가며 저녁식사를 들고 미국과 한국에 대해 서로 배우곤 하였다.

마크는 위스컨신 주에서 고교시절 친구가 모는 차를 타고가다 큰 사고를 당해 그 이후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었다. 그와 조앤은 같은 대학을 다니다 만나서 결혼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조앤은 초등학교 선생을 하고, 마크는 UC Berkeley 생물학과 학부생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다. 여기서 이들과 우리 부부가 만난 것이다. 그들은 어려움 끝에 위스컨신으로 돌아가 마크는 그곳의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손놀림이 쉽지않은 마크를 위해 학교측은 아르바이트 학생을 고용해 그의 학업을 도와주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마크는 산안토니오의 텍사스 주립대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20 여년의 시도 끝에 시험관 아기를 갖는데 성공하여 5년 전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다. 그들의 현재는 변함없이 깊은 신앙심 속에 가정생활, 학업, 직장생활을 꾸준히 이끌어오며 드라마틱하게 살아온 결과인 것이다.

조앤과 아들 조사이어는 이태 전 스탠포드에서 나의 안식년 기간 중 만났으나, 마크는 내가 시카고 대학 방문중 만난 뒤 16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들은 산안토니오의 교외에 4300평의 넓은 땅에다 세 가족을 위한 하얀 집을 지었다. 미국의 서부에서 처음 만나고
중부에서 잠깐 상봉한 뒤 24년째에는 남부에서 만나는 우리의 인생유전을 돌이켜보며 마크, 조앤과 나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우리는 조사이어와 인섭, 기섭이가 어떻게 자랄 것인가를 얘기하며 미래의 꿈도 꾸었다.

마크와 조앤 집에서 푸근한 하루를 보낸 우리는 아쉬움 속에 그들과 작별하였다. 그리고 전날 지나왔던 지방도로와 프리웨이 10번을 되돌며 휴스턴으로 차를 몰았다. 창밖에는 텍사스의 목가적인 전원풍경과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졌다. 아들은 왠지 컨트리 뮤직이 좋다며 그런 음악만 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계속 틀었다. 조앤이 싸준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때 눈앞에 보이는 풍경과 귀로 들리는 노래는 묘한 조화를 이루며 가슴에 다가왔다. 시속 130킬로 속도의 크루즈 컨트롤로 구름에 실려 가듯 차에 몸을 맡긴 우리는 텍사스 시골의 나른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절로 Brothers Four 의 'Green Fields' 와 John Denver 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 노래를 흥얼거렸다.




휴스턴에 돌아와서 아들이 아시아 학생 환영모임에 참석한 사이 나는 우리가 17년전 살던 아파트에 한번 가보았다. 아파트를 둘러보니 예전에 우리 가족이 지내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그러나 전보다 더 화려해진 옛 직장 라이스 대학과 정반대로 우리의 옛 아파트는 건물에 금이 가고 퇴색하여 초라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그동안 내가 보낸 세월이 짧지 않았음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이날 밤은 밥의 집에서 묵었다. 오래전 밥이 처음 집을 샀을 때 우리 가족을 초대했던 곳이다. 밥의 세 자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독립하여 집을 떠났다. 밥은 세 자녀가 대학을 다니던 때의 얘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다. 밥 부부와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 하다가 소설얘기가 나왔을 때 내가 수업도중 영어소설을 암송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중학교 삼학년 때 열성적인 영어선생에게서 배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집 Dubliners 의 한 단편 Araby 를 많은 동급생들이 좋아하였었다. 어린 소년의 짝사랑을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의 감동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나를 움직여 11년 전 나는 반복적으로 카셋 테이프를 청취한 끝에 Araby 를 암송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딱 세 번 수학강의에 지친 학생들을 위해 수업도중 암송해 주었었다. 밥의 아내가 자기 부부도 한번 듣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뜻밖의 장소에서 환갑이 된 부부에게 소년의 쓸쓸한 사랑 이야기를 13분 동안 들려주었다.

라이스에서의 마지막 날은 아들이 기숙사 입주를 하면서 일주일 동안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과 휴스턴의 대형마켓에서 지난 며칠간 구입한 필요물품은 차 안에 그득 찼다. 아들이 입주할 칼리지에 도착하니 칼리지 선배학생들이 아들을 반가이 맞이하며 그 무거운 짐들을 방까지 옮겨주는 것이었다. 댈러스와 뉴욕에서 온 룸메이트, 스윗메이트와 그의 부모들과 인사하며 아들과 나는 드디어 라이스 대학에 입학한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칼리지마다 부모와 학생이 함께하는 점심시간이 되었다. 다같이 식사를 드는 동안 선배 학생들이 칼리지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재미나게 소개를 하고, 학생담당 직원이 기숙사 생활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이어서 부모들에게서 여러 가지 질문도 받았다.

그리고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Say Goodbye Time 이 되었다. 부모들은 이때 자식과 헤어져야 한다. 대부분의 부모자식은 서로 껴안으며 겉으로는 담담하게 작별인사를 나눴으나, 결국 올 게 왔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는 부모자식도 있었다. 곧 이어 강당에서 총장과 학부담당학장 등이 학부모를 위한 연설을 하였다. 그들은 신입생들을 위해 최상의 교육을 할 것이라고 학부모에게 다짐하였다. 그런데 특이했던 점은 그들이 연설의 상당부분을 자식과 헤어지는 부모들의 아쉬움을 달래는 것에 할애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는 자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할 때 정식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해 나간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그러나 집을 떠나는 자식은 아쉬움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클 것이다.

밥 부부와 저녁식사를 하고 작별한 뒤 나는 휴스턴 공항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같이 온 아들을 휴스턴에 혼자 놔두고 떠나자니 나의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였다. 공항으로 차를 몰던 나의 귓가에 휴스턴 컨트리 뮤직 방송에서 아들과 듣던 Marty Robbins 의 ‘El Paso’ 가 잔잔히 흘렀다.

Out in the West Texas town of El Paso I fell in love with a Mexican girl.
Night-time would find me in Rosa's cantina; Music would play and Felina would whirl.

Blacker than night were the eyes of Felina, wicked and evil while casting a spell.
My love was deep for this Mexican maiden; I was in love but in vain, I could tell.

One night a wild young cowboy came in,
Wild as the West Texas wind. Dashing and daring,
A drink he was sharing With wicked Felina, the girl that I loved.

So in anger I Challenged his right for the love of this maiden. Down went his hand for the gun that he wore.
My challenge was answered in less than a heart-beat; The handsome young stranger lay dead on the fl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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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hing is dreadfully wrong for I feel a deep burning pain in my side.
Though I am trying to stay in the saddle, I'm getting weary, unable to ride.

But my love for Felina is strong and I rise where I've fallen, though I am weary I can't stop to rest.
I see the white puff of smoke from the rifle. I feel the bullet go deep in my chest.

From out of nowhere Felina has found me, kissing my cheek as she kneels by my side.
Cradled by two loving arms that I'll die for, one little kiss and Felina, good-bye.


계속 (스탠포드 방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