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 안식년 일기

2010년 8월25일 한국 출국, 미국 샌프란시스코 입국, 렌트카 빌림, 은행계좌 개설, 스탠포드 웨스트 아파트 입주. 가구 하나 없는 아파트에 혼자 들어가니 휑하다. 바닥에서 이불만 깔고 자니 불편하고, 부엌에 서서 식사하자니 궁상이 따로 없다. 이튿날 운전면허 갱신하고 스탠포드 대학 수학과에서 연구실을 배정받다. 8년 전 스탠포드 안식년 때 쓰던 전화기를 이번에 다시 가져와서 어바인의 인섭이(큰 애)와 통화하다.

닷새 후 아내와 기섭이(작은 애)와 뚜비(우리 개)가 합류하다. 아직 아무런 가구를 구하지 않아서 우리의 전통적인 식탁에서 식사하다. 그동안 차를 구입하느라 애를 먹었다. 8년 전처럼 신문의 광고난에서 중고차를 찾아보았으나 이상하게 안 보였다. 알고보니 인터넷 중고품 소개 사이트에서 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의 적절한 중고차(도요다 캠리)를 발견해서 차 주인에게 연락하여 찾아가 본 적이 있었다. 이 친구는 일종의 중간상인이었는데, 내게 교묘한 농간을 부리는 것이었다. 나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미리 정탐요원을 보내고, 내가 차를 테스트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내 옆 좌석에서 (이 요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그 차에 관심있는 구매자와 전화하는 것 처럼 연기하고, 트렁크 내부의 나무판자가 부러진 것과 뒷 범퍼 페인트가 일부 벗겨진 것이 이상해서 물어보니 수상하게 대충 둘러대는 것이었다. 어려움을 겪은 끝에 LA 에서 인섭이가 좀 싼 차를 구입해서 7시간 차를 몰고 올라와 우리에게 넘겨주어서 차 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가구를 구하는 과정도 끈질김이 필요하였다. 우선 식탁은 유학생들이 좋아하는 스웨덴 IKEA 것을 구입하여 내가 몇시간 동안 조립한 끝에 완성품을 만들었다. 매우 정밀하게 제작된 부품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조립과정은 어렵지 않았고 아주 재미있었다. 내가 직접 조립한 것이어서 애착이 간다. 식탁의자는 벼룩시장과 자선단체 여기저기에서 구입하다보니 일곱개가 모였다. 의자의 가격은 5불에서 15불 정도이다. TV 는 25불에 구입하다. LCD, LED TV 가 요즘 한창 나오니 옛날 것은 헐값이 되었다. 뚜비는 데려오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함께 왔다. 그런데 요놈이 여기가 좋은지 매일 아침 거실에서 펄쩍펄쩍 뛴다. 키우던 개를 데리고 와서 같이 지내니 우리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출근길 2.5 키로, 걸어서 30분, 버스로 20분, 자전거로 10분.

아파트 단지를 떠나, 요양원을 지나, 스탠포드 일가 무덤을 끼고돈다. 스탠포드는 대륙횡단열차 부설사업으로 큰 재산을 모으고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지냈다. 가족동반 유럽여행 도중 16살의 외아들이 죽자, 전 재산을 투자하여 아들 이름으로 대학을 건립하였다. 이제부터 캘리포니아의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들이 된다고 부인을 설득하며.

팜 드라이브를 따라, 넓은 Oval 을 지나면 수학과가 보인다.
퇴근길

수학과를 출발, 빌게이츠 건물을 끼고, 큰나무를 지난 뒤, 아파트 단지에 다다른다.

3평의 자그마한 연구실. 창문이 없다. 미궁 속의 연구기록이 적힌 노트.

차를 살 때 임시로 구입한 L 사의 자동차보험은 보상액이 적으면서 보험료는 별로 싸지 않은 것이었다. 예전에 들었던 S 사에 가서 알아보니 싸게 해주었다. 혹시나 해서 F 사의 한 에이전트에게도 문의해보니 더 싼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전형적인 보험 에이전트와는 인상이 달랐다. 부드러운 느낌은 없고 텁텁한 분위기의 사내였다.
"버클리에서 학위 받았으면서 스탠포드에 교환교수로 있는 것은 모순된 행동이 아니야?" (버클리와 스탠포드는 미국 서부에서 용호상박의 관계임)
"그렇다고들 하지만, 그러면 어때서."
"나는 1985년에 24시간 동안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지."
"꽤 오래 있었네."
"버클리 학위증 한달 내에 보내줘, 20% 할인해 줬으니까."
"그럴께."

안식년 오는 것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재미있게 지내던 생활을 중단해야 하고, 가까운 친구와 친지를 떠나야 하고,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편치않은 이국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하기나름에 따라 이국에서의 반대급부도 있지만.

8년 전 안식년 왔을 때 사진을 많이 찍어 노트북에 저장했었는데 그만 노트북 하드디스크가 고장나는 바람에 다 지워졌었다. 그 사진화일을 백업으로 CD 에 저장했었는데 이마저 이상하게 몇달 뒤 모두 지워져서 지금까지 아쉬움이 남는다. 9/11 사태 때 쌍둥이 빌딩에 있던 금융기관들은 컴퓨터 기록의 백업을 다른 두 곳의 빌딩에 각각 저장해두었기 때문에 초유의 사태를 아무 문제없이 극복할 수 있었단다. 우리 인생의 백업은 자식 키우기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백업을 더 키우지 않아서 미련이 남는다.

추석 이틀 후 Palo Alto Moonlight Run 이 있었다. 밤 아홉시 경 밝은 달 아래 10 키로 달리기 대회였다. 샌프란시스코 만의 개펄을 달빛이 은은히 비칠 때 천 여 명의 사람들이 헉헉거리며 뛰었다. 그야말로 달밤의 체조였다. 한국에서의 달리기 대회에 비해 덜 조직적이고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어둡고 좁은 길을 많은 사람들이 뛰니 꽤 위험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후래시, 야광 띠를 많이 갖고 뛰었다. 55 분 25초, 지난 봄 기록보다 3 분 더 걸리다. 미국 사람들처럼 어느 새 내가 과체중이 되었나? 아니면 지난 한달 간 연구에 열중한 나머지 몸이 축났나?
    내가 한창 뛰던 때 한국의 암벽등반 동료들은 도봉산 선인봉을 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바위를 즐겁고 무사히 올랐길 빈다. 오늘로 미국에 온 지 한 달이 지나다.


아침 출근길에 두 할아버지를 따라가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길가의 차에 다가가서 친구에게 말했다.
"이 차는 한국의 소나타야. 그런데 이 상표 좀 봐. 혼다의 상표를 훔쳤잖아"
"그런가? 근데 소나타는 요즘 잘 팔린다고 해."
두 상표가 비슷하다고는 생각했지만 현대가 혼다 것을 훔쳤다고 말하는 것은 뜻밖이다.

타블로의 학력논쟁에 관한 기사가 스탠포드 학교신문 1면에 크게 나다.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 기사도 실었는데 그 기자 왈 타블로가 TV 에서 자주 스탠포드 졸업했다고 말한 것이 네티즌들을 질투하게 했단다. 그들은 어떤 증거를 보여도 소용이 없는데 그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하기 때문이란다. 스탠포드 교무처장 왈 "우리는 세계인에 관해 얘기하곤 하지만 지구의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 세계인이 될 준비가 안된 것 같다."

필즈메달(수학의 노벨상) 수상자 테렌스 타오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대중강연을 하다. 전날 수학과에서 한 전공강연이 보통이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으나 500여명의 청중이 모인 이 대중강연은 무척 재미있고 인상적이다. 제목은 The Cosmic Distance Ladder 라고 지구, 달, 해, 행성, 항성, 은하계, 성운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하지 정오 때 두 지역의 태양 각도차이로 지구의 반지름을 계산하고, 월식이 세 시간 걸린다는 사실로부터 달까지의 거리가 지구 반지름의 60배라는 계산을 하고, 달이 지평선에 지는 데 2분 걸린다는 것으로부터 달의 반지름이 지구의 1/3이라고 측정하고, 일식 때 달이 해를 거의 완전히 덮는다는 사실로부터 해도 달처럼 지구까지의 거리가 반지름의 1/180이라고 계산하고 (실제는 1/215), 삭망으로부터 보름달까지 기간의 반보다 10시간 전에 (실제로는 40분 전에) 반달이 된다는 것으로부터 해까지의 거리가 달까지보다 20배라고 (실제는 390배) 계산하였다.
    이 계산을 한 사람은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인 아리스타쿠스인데 그는 해의 지름이 지구 지름의 7배라고 (실제는 109배) 계산하고, 해가 너무 크므로 해가 지구 주위를 돌 수 없다며 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인들은 만일 지구가 해 주위를 돈다면 연주시차때문에 별들의 위치가 계절마다 바뀌어야하는데 실제는 이것이 관측되지 않으니 지동설은 틀리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성에서 해까지의 거리는 코페르니쿠스가 계산하였다. 그에게 도움이 된 것은 5000 년 전 바빌로니아 시대에 알려진 사실인데, 그것은 화성이 780일 마다 제자리에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구의 공전 각속도 1/365와 화성의 각속도 차이가 바로 1/780이라는 사실로부터 화성의 공전주기 687일을 구하였다. 이 자료와 며칠간의 화성 관측자료를 이용하여 코페르니쿠스는 화성의 해까지의 거리는 지구의 그것(AU)보다 1.5배라고 발견하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이같은 계산은 화성의 궤도가 원이라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하였는데 케플러는 이 계산이 자기가 물려받은 티코 브라헤의 화성 관측기록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화성의 궤도를 계산하는데 어려운 점은 지구와 화성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정작 필요한 것은 화성이 정지해 있고 지구가 움직일 때의 관측기록인 것이다. 이 난제를 케플러는 천재적으로 극복하였다.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의 관측기록을 화성의 공전주기 687일마다 모아서 마치 화성이 정지해있고 지구가 움직일 때의 기록을 얻어낸 것이다. 지구 궤도를 구한 다음 그는 역으로 화성의 궤도를 계산하여 그것이 타원임을 보였다.
   천문학자 뢰머가 빛의 속도를 계산한 얘기도 인상적이다. 목성에 제일 가까운 위성 이오의 공전주기는 42.5시간인데 이동안 이오가 목성 뒤에 가려지는 시각은 지구가 목성에 다가갈 때와 멀어질 때에 15초 씩 빨라지거나 느려진다는 사실을 뢰머는 발견하였다. 그는 이 것을 도플러 효과와 같은 논리로 해석하여서 빛의 초속을 22만 키로라고 계산한 것이다. 모처럼 흥미로운 대중강연에 많은 청중들이 감동받은 것 같다. 강연장에서 11년 전 서울대에서 내 수업을 들었다는 컴퓨터 공학과 박사과정 학생(이창한)을 만나 반가왔다.

Vancouver 에 있는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를 방문하다. 뱅쿠버 공항에 도착하니 김영헌 선생이 두 딸과 함께 마중나왔다. 그는 포항공대 90학번인데 UBC 수학과에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가랑비 속에 김 선생의 차로 Stanley Park 와 Lions Gate Bridge 를 구경하다. 그리고 김영헌 선생의 집에서 낙지볶음, 매운탕과 네 가지 나물로 한국에서보다 더 한국적인 음식으로 저녁을 맛있게 들다. 김 선생의 아내는 카프카를 좋아하여서 우리는 뜻밖의 얘깃거리로 풍요로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뱅쿠버 중심가에서 10km 떨어진 반도에 자리잡은 UBC 는 1915년에 건립되었는데 캐나다에서 둘째가고 세계에서 31위인 대학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캠퍼스는 조용한 바닷가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매우 아름답다. 스탠포드 캠퍼스의 아름다움은 자타가 공인하지만 그 치밀하게 디자인된 캠퍼스에는 완벽함과 함께 숨막힘도 있다. UBC 와 버클리의 캠퍼스는 완벽함은 없지만 여유로움은 있다.

초청자 아일라나와 징이는 나와 같은 지도교수 밑에서 학위를 하여 전부터 잘 아는 사이다. 7년 전에 이들이 캐나다 로키산맥의 밴프에서 주최한 학회는 내 기억에 남는 학회였고 그 기억은 글로 남았다. UBC 수학과는 다섯 개의 빌딩에 흩어져 있단다. 아일라나와 징이의 연구실이 있는 빌딩은 UBC 에서 가장 오래된 빌딩 중의 하나여서 고풍스럽다. 아일라나의 최근 논문은 내가 좋아하는 Frankel 의 논문을 이용한 것이어서 매우 흥미로왔다. 관련된 문제를 같이 물색하며 얘기를 나눴다.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것이지만 암중모색을 하며 해결 가능성을 찾아 서로 의견을 교환하다.

첫날 네 시에 김영헌 선생의 소개로 내 세미나를 시작하다. 강연하며 재미있었다. 7년 전에 스탠포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기억이 떠올랐고, 상당수 청중들이 강연내용에 흥미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강연 후 아일라나, 징이, Albert Chau 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다. 앨버트는 3년 전에 한국여자와 결혼했단다. 그와 대화하기는 꽤 즐거웠다. 내가 정통 캐나다 음식을 먹어보자고 말했으나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미국과 캐나다의 차잇점을 물어보니 앨버트는 미국 문화는 멜팅팟, 캐나다 문화는 모자이크라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이민자들이 각자의 문화적 다양성을 가져와서 그것을 캐나다인들이 배우면 사회가 풍요로와진다고 생각한단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면 이전의 생활방식에 상관없이 미국적 사고와 삶의 방식을 따르기를 기대한단다. 미국인과 캐나다인의 차잇점을 물어보았으나 별 뾰죽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미국인은 좀 더 자신감이 있어 보이지 않냐고 물으니, 미국사람들이 거만하게 보이냐는 말이냐고 되묻는다. 내 질문이 선을 넘었나 보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아일라나와 대화를 하다. 극소곡면이 꼬일 수 없기 위한 곡률 조건에 대해서 같이 연구하기로 합의하다. 아일라나의 차는 1991년 Chevrolet Caprice Classic 인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단다. 본네트와 트렁크가 길다란 구식 미국 스타일의 차여서 첫 눈에 뜨이는데 휘발유는 많이 들지만 깔끔하고 승차감이 좋다.
    캠퍼스를 거닐다가 인상적인 기념식수 팻말을 읽다. 1993년 대학원생들이 졸업하며 심은 나무 앞에 "The learning has just begun" 이라는 팻말을 세웠다. 그 대학원생들 지금 쯤 많이 배웠으리라. 학위논문은 지도교수의 가르침 아래 쓰지만 학위를 받은 이후에는 스스로 문제거리를 찾아 논문을 써야한다. 자립해야 하는 것이다. 수학자 중에서 상당수가 학위논문보다 좋은 논문을 쓰지 못한다고 한다.
    미국에 온 지 두 달이 되다.

주말에 인섭이가 놀러오다. 가족이 함께 UC Santa Cruz 캠퍼스를 거쳐 몬터레이의 카멜 비치에 놀러가다. 모래가 매우 곱고 석양이 아름답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US 해프마라톤을 뛰다.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안에서 금문교를 건넌 뒤 돌아오는 코스인데 경치는 매우 아름다왔다. 그러나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쉽지 않았고, 계속 비가 내려 뛰기 힘들었다. 3천명이 참가했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10% 더 많은 게 신기했고 가끔 양말만 신고 뛰는 사람도 보였다. 이날 내 기록은 2시간 9분. 서울에서 찾아온 독문과 고원 교수도 같이 뛰었다.

결혼 30주년이 되다. 결혼 후 진해에서 신혼살림, 미국 유학생활 하며 두 아이 출생, 한국에 돌아와서 가르치는 생활, 그리고 안식년. 결혼 전의 삶이 내게 던져진 삶이라면 결혼 후의 삶은 내가 꾸려가는 삶이다. 결혼 60주년을 꿈꿔보다.

벡텔 인터내셔널 센터는 스탠포드의 외국인 학생과 방문교수를 위한 업무 외에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는 여러가지 행사를 수시로 연다. 이곳의 디너파티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나다. 아흔 두 살의 연세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또렷한 말씨로 자기의 인생 얘기를 재미있게 쏟아내는 이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그에 이끌려서 며칠 후 나와 아내는 점심식사를 같이 들며 그의 얘기를 계속 들었는데 이를 적으면 다음과 같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Leon Fisher 인데 1918년생이다. 1934년 버클리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하여 1943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이후 2년간 로스 알라모스에서 원자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플루토늄 폭탄 기폭제를 만드는 일을 하였다. 그는 원자탄 만드는 일이 싫었다. 원폭 최초 실험 날 그는 일부러 콜로라도 근처까지 차를 몰고 가서 실험 목격하는 것을 피했다. 그리고 그는 종전 후 로스 알라모스를 빨리 떠났다. 미국은 당시 국가예산의 2%를 쏟아부으며 원폭제조에 전념했다. 그만큼 독일이 먼저 만들까봐 안절부절한 것이다. 이미 1944년 12월에 독일이 원폭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미국은 계속 원폭제조를 진행했다. 당시 아이젠하워 장군, 로스 알라모스 소장 오펜하이머등의 과학자들이 원폭사용을 반대했으나 트루만 대통령은 일본에 원폭을 두 차례 투하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진주만 습격으로 인해 미국이 일본을 증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사실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것에는 당시 미국인의 동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굳이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투하하기보다 동경 근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원폭을 터뜨려 큰 충격파를 일본 군부에 전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도 있었다.
    Fisher 할아버지에 의하면 오펜하이머의 인품은 호감을 주는 면이 있는 반면 지저분한 면도 있었다고 한다. 한 포스트 닥터가 세미나 에서 발표할 때 오펜하이머는 "당신의 결과가 모두 틀렸소"라고 그자리에서 말할 정도였다. 나중에 수소폭탄 제조에 성공한 텔러는 로스 알라모스에서 오펜하이머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텔러는 베테 밑에서 일을 해야하는 것에도 불만이 있었다.
    Fisher 할아버지는 샌프란시스코의 고등학교의 2년 후배인 아내와 1943년에 결혼하여 66년 동안 살았는데 작년에 아내가 타계하였다며 쓸쓸히 얘기한다. Fisher 부부와 네 명의 아들 딸은 모두 버클리 대학을 나왔다. 자기가 쓴 1941년의 화학논문을 최근에 그의 손자가 인용하였다며 대견해 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그린 손녀의 그림을 그의 거실에서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그의 아내는 로스 알라모스에서의 삶의 기억을 책으로 펴냈고 이 책은 일본어로도 번역됐다.
    미국에 온 지 넉 달이 되다.


토요일에 수시로 아내가 샌프란시스코 융(Jung) 연구소에서 세미나를 듣는 동안 나는 시내 North Beach 지역 카페에서 너댓 시간 기다린다. 말만 beach 이지 내륙에 위치한 이곳은 원래 이태리 인들의 지역이지만 인근의 차이나 타운이 잠식해 들어오는 곳이다. 여기에 Vesuvio 라는 카페가 있는데 이곳은 1950년대 말 Beat generation 의 대표작가 Kerouac 등의 시인과 예술가들이 자주 찾던 곳이다. 나는 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인근 이태리 카페 Puccini 에서 점심을 들고 소설, 신문, 논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한번은 근처 텔레그라프 언덕의 Coit Tower 에 가보다. "내가 사랑하던 샌프란시스코를 아름답게 만들어 달라"는 Coit 여사의 유언에 따라 그녀 유산의 1/3로 64m의 탑이 1933년에 지어졌다. 이곳에서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더니 나 밖에 안 와서 가이드의 설명을 1:1로 듣게되다. 이 탑의 꼭대기에서는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경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은 26명의 화가가 그린 벽화가 잘 알려져 있다. 대공황 시절 화가들에게 일거리를 주기위한, 그리고 공공장소에 벽화설치를 시도하기 위한 조처의 결과물이다. 그 당시 미국도 어려워서 사회주의 운동으로 몸살을 앓았었는지 벽화의 내용이 상당히 이념적이다.


하바드 대학에 있는 필즈메달 수상자 Yau 가 스탠포드에 와서 대중강연을 하다. 최근 그가 펴낸 책 THE SHAPE OF INNER SPACE 를 소개하는 강연이었다. 수학과 물리학이 어떻게 서로 도움이 되는가를, 특히 Calabi-Yau 공간과 물리학의 끈이론 사이의 관계를 재미있게 기술한 책이다. Yau 는 스무 살에 UC Berkeley 대학원에 진학하여 2년 후 Chern 의 제자로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년간 프린스톤 고등연구소, 2년간 Stony Brook 에 근무하다가, 1974년에 스탠포드, 1979년에 다시 프린스톤, 1984년에 UC San Diego 로 옮긴 뒤, 1987년부터는 하바드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Yau 는 대학원 1년생 때 대수적 위상수학, 리만기하학, 편미분방정식 등 기초과목을 수강하고 일반상대성이론 등 여러 과목을 청강하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에서 살던 Yau 는 크리스마스 휴일 동안 저널에서 곡률과 위상 사이의 관계에 관한 논문을 읽고 매우 흥미를 느꼈다. 바로 지난 학기에 배운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논문을 확장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 그는 곡률과 위상 사이의 관계가 물리학에서 유용할 것이라는 말을 인상깊게 듣고 평생 잊지 않았다.
    수학자 리만의 혁명적인 공간개념은 유클리드 공간에만 익숙하던 인류의 눈을 새로 뜨게하여 일반적인 공간을 볼 수 있게하여 주었다. 그 50년 후 아인슈타인은 리만공간을 이용하여 뉴튼의 중력개념과 특수상대성 이론을 결합시킨 일반상대성 이론을 완성하였다. 이 새로운 이론은 중력을 두 물체 사이의 인력으로 보는 대신 시공간의 곡률로 이해한다. 시공간의 구부러진 정도가 물체의 분포상태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Yau 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서 물체의 질량이 시공간의 곡률의 일부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특이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물체가 없는 진공상태의 시공간이 과연 구부러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였다. 즉 물체가 없고 닫힌 공간에 중력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Yau 는 이런 공간이 없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그가 1970년대 초 이 문제를 생각했을 때 Calabi 라는 수학자가 이 문제와 거의 똑같은 문제를 이미 제기하였었다. Calabi 의 예상은 켈러 다양체, Ricci 곡률과 Chern class 등의 어려운 말로 표현되지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으로도 기술될 수 있다. 단지 Calabi 는 닫힌 공간이 supersymmetry 라는 대칭성질을 만족해야 한다고 추가로 가정하였다. Yau 는 Calabi 가 예상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3년간 노력했다. 이 공간의 성질이 지나치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73년 8월 스탠포드에서 Chern 과 Osserman 이 3주간의 학회를 주관하였다. 이 학회에서 Yau 는 드디어 Calabi 가 예상한 공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고, Calabi 를 포함한 참석자들은 이 결과를 매우 좋아하였다. 그러나 두 달 후 Calabi 는 Yau 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증명에서 이해할 수 없는 한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이 편지를 읽은 Yau 는 그 자리에서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 이후 2주일 동안 Yau 는 거의 잠을 못자며 증명의 잘못된 부분을 메꿔보려 했으나 계속 증명이 안 되는 이유만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Yau 는 결국 Calabi 의 예상은 맞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렇게 방향을 정한 이후 Yau 는 Calabi 예상의 증명에 매진하여 마침내 1976년 성공하고야 만다. 그리고 Yau 는 Schoen 과 함께 일반상대성 이론의 positive mass 예상도 증명하였는데 이로서 Yau 는 물리학에 더욱 관심을 갖게된다. 이 두 업적으로 Yau 는 1982년 필즈메달을 받았다.

    Yau 는 Calabi 예상을 증명할 때 그 예상의 성질을 만족하는 공간을 일반적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Calabi-Yau 공간이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수학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공간인데, 바로 이러한 사실로 인해 물리학과 자연을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Yau 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당시 그는 물리학을 충분히 알고있지 않았다. 그런데 1984년 Yau 는 Horowitz 와 Strominger 라는 두 물리학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끈이론에 근거하여 진공상태 우주를 기술하는 한 모델을 연구하고 있었다. 끈이론에 의하면 시공간은 10차원이며 supersymmery 를 갖고있어야 한다. 그들은 끈이론에 중요한 역할을 할 공간으로서 Calabi-Yau 공간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 공간이 갖고있는 supersymmetry 가 그들이 원하는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전화로 Yau 에게서 확인하였다. 곧 이어 Yau 는 물리학자 Witten 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지금이 이론물리학의 중요한 시기이며 끈이론으로 모든 힘의 통일, 즉 아인슈타인이 오랜 세월 보이려 했던 통일장이론을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흥분하였다. Witten 등의 물리학자들은 10차원 시공간에서 사람이 느끼는 4차원을 빼고 남는 6차원이 Calabi-Yau 공간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람이 사는 4차원 공간의 각점마다 6차원 Calabi-Yau 공간이 숨어있는데 이 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이 우주의 물리학을 결정한다고 끈이론 연구자들은 주장한다. 즉 Calabi-Yau 공간의 모양이 입자의 질량과, 상호작용 성질과 심지어는 자연의 중요상수들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중력현상을 공간의 기하학으로 설명하였는데 끈이론은 이보다 더욱 대담하게 Calabi-Yau 공간의 기하학이 우주의 물리학을 규정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Calabi-Yau 공간의 개수가 적다면 우주를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Calabi-Yau 공간의 개수는 매우 많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Yau 는 그 개수가 유한할 것이라고 믿는다.
    Calabi-Yau 공간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들을 즈음 1980년대 말 Green, Plesser, Candelas 가 mirror symmetry 를 도입하였을 때 사람들은 다시 흥미를 갖게되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두 개의 모양이 서로 다른 Calabi-Yau 공간이 같은 물리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Strominger, Yau, Zaslow 는 SYZ 예상을 내놓았다. 즉 6차원 Calabi-Yau 공간은 두 개의 3차원 공간 M,N 으로 나뉘고 이 중 M 은 torus 인데 이를 invert 한 M' 을 N 과 결합한 것이 바로 원래 Calabi-Yau 공간의 mirror pair 라는 것이다. SYZ 예상은 일부의 경우만 풀리고 일반적인 경우는 아직 미해결이다. 한 Calabi-Yau 공간의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을 때 그것의 mirror pair 에서는 쉽게 풀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뜻밖의 진전에 감탄한 나머지 Yau 를 포함한 수학자들은 물리학자의 직관력을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2000년간 기하학이 탈바꿈을 할 때마다 물리학은 발전하였고 그만큼 우리는 자연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Yau 는 끈이론과 이에 관련된 수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21세기에 또다른 중요한 발전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예언한다. 아마도 양자물리학과 일반상대성 이론을 통합할 quantum geometry 라는 것이 나타날 것이라고.
    그러나 수학이론 좋은 것 하나가 과연 우주 상수와 대통일 이론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소위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고 추정되는 이론도 있지만 이런 대범한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버뮤다 삼각지대가 자연에는 존재할지도 모른다.
    미국에 온 지 반년이 지나다. 안식년 중 첫번째 연구문제가 거의 풀리는 것 같다.

미네소타 대학을 이레 동안 방문하다. 강연을 두 번 하고 걸리버와 공동연구를 하기위해서이다. 떠나는 날 공항 셔틀버스가 난데없이 15분 일찍와서 서두르다가 그만 여권과 카메라를 두고 떠나다. 그러나 비행기는 한 시간 늦게 출발하다. 숙소는 미네소타 대학의 fraternity house 였던 3층 집을 개조한 게스트 하우스이다. 열 한 명이 아침과 저녁을 다이닝룸에서 자주 같이 들며 서로 얘기를 나누다. 대부분이 석달 내지 1년을 같이 생활하여서 서로 친밀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UC Davis 의 이란인 방문교수, 스웨덴 Gothenberg 대학의 부부교수, 우루과이에서 방문 중인 두 명의 포스트닥, 바르셀로나에서 온 포스트닥 엠마, 콜로라도에서 방문 중인 멕시코인 루이스, 호주에서 온 여자, 계명대 의대 김형태 교수 등이 한 가족같이 지낸다. 출장 갈 때 묵는 호텔에서는 다소 삭막하게 지내게 마련인데 이곳 게스트 하우스는 푸근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다. 이들 중에서 루이스는 나를 처음 보더니 버클리를 다니지 않았냐고 묻는다. 학생 때 나를 봤다고 말하여 나는 매우 놀라고 반가왔다. 맥주집에서 맥주를 주문하니까 신분증을 보자고 한다. 모두에게 신분증을 보자고 하는지, 아니면 내가 젊어 보이는지?
    걸리버와 매일 수시로 만나며 공동관심사에 대해 두서없이 좌충우돌의 대화를 나누다. 결국 마지막 날 오후 늦게 공동연구에 진전을 이루기 시작하다. 다섯 번 째 공동논문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첫날과 마지막 날 저녁 식사를 한 곳은 로링 파스타 바인데 이곳 처럼 파스타를 맛있게 하는 곳은 처음이다. 게스트 하우스와 파스타 바가 있는 지역은 딩키타운이라 불리는 곳인데 유명가수 밥 딜란이 미네소타 대학 재학중 공연하던 곳이다. 첫날은 일요일 밤이라 식당측이 홀의 반을 비워서 식사하러온 사람들 일부가 탱고를 추다. 영화에서 보던 탱고처럼 농염하고 무드있게 추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분위기를 내려고들 노력한다. 한 커플은 밴드에 맞춰 남자가 앞으로만 가고 여자는 할 수 없이 뒤로 움직이기만 한다. "흠, 저 정도는 나도 추겠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또 해프 마라톤을 뛰다. 기록은 2시간 7분. 맑은 날 아침 금문교 주변의 바다 경치는 아름답다.


미네소타 대학에서 돌아온지 열흘 후 유타 대학을 엿새간 방문하다. 19년 만에 방문하는 것이다. 같은 지도교수 밑에서 공부했던 동기 Nat, 그리고 친구 Andrejs 와 Nick 이 있는 곳이라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다. Nat 집에서 머물며 가족들과 밀린 얘기를 나누며 즐겁게 지내다.

콜로퀴엄 강연을 한 다음 날 Nat, 그의 아내, 딸과 함께 다섯 시간 차를 몰고 유타 주 남부의 Alcatraz Canyon 으로 가서 캠핑하다. Nat 가 준비해와 만든 칵테일 마가리타를 마신 뒤 나는 그만 흥이 나서 달빛과 별빛 속 유타 사막에서 노래를 부르다. 영화 '흑인 올페'의 주제가를. Nat 가족이 뜻밖의 장소에서 노래를 듣고는 즐거워하다.
영화 '127 시간'의 무대인 Bule John Canyon 옆에 있는 것이 우리가 간 Alcatraz Canyon 이다. 이곳은 처음부터 canyon 아래로 50 미터 밧줄 하강하는 곳이어서 긴장해야 하다. 밧줄을 차 범퍼에 묶고 하강하다보니 차 브레이크가 풀리지 않을까 걱정하다. 이곳은 사암으로 이루어졌는데 수억년간 빗물에 씻기다보니 좁은 틈새의 침니가 수십미터 깎여 생긴 것이다. 그 틈새를 두 발, 두 무릎, 두 손바닥과 두 팔꿈치로 균형을 유지하며 비집고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비가 온 지 오래돼 가끔 있는 웅덩이에는 다행히 물이 없다. 너무 깜깜해 불을 켜야하는 곳도 있다. 세 시간 정도 바위에 끼여 어렵게 전진한 뒤에야 넓은 협곡의 바닥에 다다르다. 서부 영화에 나옴직한 황량한 구릉지대를 우회하여 지친 발걸음을 재촉하며 두어 시간 오르막 길을 걸으니 출발지점이 눈앞에 보인다.



아내는 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한다. 내 연구가 어떻게 진행돼 가는 지도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 매일 나는 퇴근 후에 저녁 식사를 하며 그날 지낸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준다. 한창 하던 연구에 큰 진전이 있을 때 가족과 함께 저녁을 들며 자축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며칠 후 내 증명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는 함께 실망하기도 했다. 이런 일은 가끔 겪는 일이다. 학문의 가설과의 전쟁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학가상사(學家常事)이리라. 병가상사(兵家常事)에서 따온 말이다. 아내는 둘째 아들이 인턴으로서 실험실에서 지내는 얘기를 매일 밤 듣는 것도 즐거워 한다. 30년 전 유학생이던 내게서 듣던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 집에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반도이다. 반도의 동쪽은 샌프란시스코 만이고 서쪽은 태평양, 북쪽은 금문교이다.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태평양으로 시내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12 km 의 거리를 달리는 대회(Bay to Breakers)가 매년 열리는데 올해가 그 백년 째이다. 올해는 4만 4천 명이 참가하였는데 사람들은 미항 샌프란시스코의 중심가 걷는(?) 것을 큰 축제로 여기고 있다. 특이한 점은 참가자들의 상당수가 요란한 의상을 입고, 개성있는 치장을 하며, 유별난 물건을 소지하고 걷거나 뛴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옷을 입지않고 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사람들을 제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사회의 한 특성이 있는 것 같다. 개인의 행동과 의견 표현이 사회에 불편함과 손해를 끼치더라도 그것이 불법이 아니라면 그 개인에게 제약을 가하지 않는다. 이점은 아직 내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작년에 코란을 불태우겠다고 공표하여 전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던 미국 목사의 사건도 특이한 일이었다. 결국 그 목사는 코란을 불태웠고 이에 격분한 집단에 의해 50 여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되었다. 미국 사회 대부분이 그 목사의 언행에 우려와 반대를 확실히 표현했으나, 한 개인이 의견을 표명할 권리도 갖고 있다는 것이 미국인들의 기본 견해였던 것이 매우 특이한 일이다.
    중심 거리 한복판을 70 여분 뛴 뒤 종착점에 가까이 가니 태평양의 흰 파도 장관이 눈 앞에 펼쳐졌다.


좁고 창문이 없는 연구실에서 매일 연구를 해야하는 것은 고역이다. 이 연구실에서 해방되는 시간은 점심 들러 갈 때와 카페에 들를 때이다. 스탠포드에는 식사할 곳과 커피 마실 곳이 캠퍼스 여기저기에 많이 흩어져 있다. 그 중에서 자주 들리던 카페는 Coupa Cafe, Bytes Cafe, Tresidder 이다. Coupa Cafe 는 캠퍼스에서 가장 커피 맛이 좋다고 대학신문이 선정한 곳인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카페에서 한번은 카프카 소설을 읽고 있는데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스탠포드 병원 응급실의 의사인데 공동 관심사에 대해서 얘기하다보니 100분이 흘렀다. 내가 90여년 전에 제기된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니까 응급실의 의사는 몇십분 전에 발발한 건강문제를 다룬다며 자기와 나는 극과극의 관계에 있단다. Bytes Cafe 는 동료 수학자들과 얘기할 자리를 갖기 위해 점심 들러 가는 곳이다. 이곳의 음식은 좋아하지 않으나 같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 여기서 서울대 물리학과 98학번 신원석을 뜻밖에 만나다. Tresidder 는 여러가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고 많은 테이블이 있어서 좋아하는 곳이다. 8년 전에는 여기서 포항공대 졸업생 이원재,서혜진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이들 카페에서는 내가 시종 'single espresso for here' 를 마시니까 웨이터가 내가 주문하기도 전에 'single espresso for here' 를 외친 적이 두 번이나 있다. 카페에서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읽고 얘기하던 것이 내 몸과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으리라.

체코의 독일계 유태인 소설가 카프카는 마지막 장편소설 '城(The Castle)'을 다 끝내지 못하고 폐결핵으로 죽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K'는 측량기사로 성을 찾아간다. 그런데 성하마을 주민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성의 관리들은 K를 만나주지 않으며 단절감, 관료주의, 권위등으로 그를 좌절시킨다. 어둡고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이 소설에서 K는 체제에 맞서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며 나락에 빠져간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K의 성이 마치 이번 안식년 동안 풀려고 하던 나의 연구문제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90여년 전 제기된 극소곡면의 등주부등식 문제는 지난 25년간 내 호기심를 자극했고, 나를 즐겁게 하며 동시에 내게 수많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이번 안식년동안 부분적인 해결만 해서 진리의 성에 완전히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카프카 소설의 음울한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지난 1년간 스탠포드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K를 자기 옆에 앉히고 힘들게 말을 꺼냈다. 말을 알아듣긴 힘들었으나 그녀가 말한 것은...'이란 미완의 문장을 끝으로 카프카는 펜을 놓았다. 카프카의 K는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소설이 끝났으나 나는 아직도 진리의 성을 바라보며 들어갈 문을 찾아보고 있다. 이것으로 한 가닥 마음에 위안을 삼아볼까...


귀국 보름 전 가족과 함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4박5일간 다녀오다. 28년 전 대학원생 3년째 박사자격시험에 통과한 기념으로 다녀온 이래 이번이 네번째이다. 다른 좋은 곳도 많은데 왜 요세미티만 가는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북한산 도봉산과 비슷한 분위기여서인가? 물론 스케일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 여섯 달 전에 예약했는데도 이미 늦은 것이어서 매일 숙소를 옮겨다녀야 하다. 요세미티 폭포, 요세미티 공원의 제일 전망 좋은 곳 Glacier Point, giant sequoia 숲이 있는 Mariposa Grove, Mirror Lake, Vernal 폭포, Nevada 폭포, Merced 강변 아침식사, Tuolumne Meadow, Lembert Dome 등반, Tioga Pass, Mono Lake, Tenaya Lake, Olmsted Point 등을 구경하다. 이중 달밤에 인적 끊인 Glacier Point 에서 폭포 물소리 들으며 곰이 올까 두려워하며 저녁식사를 하던 것이 가장 기억난다. 그리고 가파른 바위산 Lembert Dome 에 올라서 Tuolumne Meadow 의 경치를 구경한 것도.

요세미티는 5억년 전에 바다 밑바닥이었다가 지각운동으로 3000미터의 산이 되었다. 3백만년 전 빙하가 화강암을 깎아내려 1500미터 깊이의 요세미티 계곡이 생겼다. 만년 전 빙하가 다 녹아 요세미티 곳곳에 호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1890년 미국의 자연보호 운동가 John Muir 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요세미티는 미국의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구상의 생물 중 가장 큰 1000살-3000 살의 나무 giant sequoia 는 그 크기가 무지막지하다. 그런데 5억년 전의 해저, 300만년 전에 빙하로 깎인 바위 계곡, 2000살 된 나무는 내게 시간의 흐름을 그리 실감나게 해주지 않는다. 내 가슴에 세월의 흐름을 가장 쓸쓸하게 전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유명 사진작가 Ansel Adams 의 1930년대 요세미티 흑백사진이다. 왜 이 사진들은 이다지도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케 하는가?


1년전 구입한 식탁과 의자를 팔려고 사진을 찍어 Craig's List 에 띄우다. 결국 식탁과 좋은 의자 두 개만 헐값에 팔리고 나머지 의자는 내다 버리다. 타고 다니던 차는 인섭이에게 주고 인섭이가 몰던 차는 기섭이에게 넘기다. 기섭이가 묵을 아파트를 두 달만에 간신히 구하다.


스탠포드에 온 지 365일만에 귀국길에 오르다. 1년을 꿈같이 보내다. 여기서 가까와진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