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인물. 그 사람은 왜 어디서나 나를 쳐다보는가?


수학과 사은회 때의 일이다. 학생들과 저녁식사 후 맥주 집으로 자리를 옮긴 뒤 우리는 웬만큼 흥이 올라 있었다. 그 맥주 집 벽에는 큰 달력이 걸려 있었는데 그 달의 사진에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매혹적인 아가씨가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한 마디 하였다.
"그런데 저 아가씨가 왜 아까부터 자꾸 나만 쳐다보고 있지?"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그러자 한 학생이 반박하였다.
"선생님, 저 아가씨는 저보고도 웃고 있는데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아가씨는 나뿐 아니라 좌중의 모든 사람에게 눈을 맞추며 미소를 보낼 수 있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이런 현상에 매우 익숙한 학생들은 그런 것이 당연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기껏 나온 답은 사진이 평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나는 학생들을 상대로 맥주를 곁들이며 비키니 수영복 아가씨에 대한 마지막 수학강의를 하였다.

여기에는 기하학적인 문제가 관여돼 있다. 사람의 시선은 말 그대로 수학에서 얘기하는 직선이다. 직선은 두 개의 점이 결정한다. 사람의 시선은 눈동자의 점과 망막의 중심점(황반)이 결정하는 직선이다. 사람의 눈동자는 빛이 처음으로 부딪히는 점이고 망막은 안구를 통과한 빛이 시신경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시선을 갖고 있으며 이 시선은 삼차원 공간을 누비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 두 사람의 시선이 겹쳐져서 한 직선이 되면 우리는 그야말로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고 말한다.

한편 한 사람의 사진을 찍을 때 그 사람이 카메라의 렌즈를 쳐다보면, 즉 그의 시선 위에 렌즈가 놓이면, 그때 찍은 사진에 나온 사람의 시선은 한 점밖에 안 된다. 그 이유는 사진 찍는 작업이란 렌즈를 지나는 모든 직선을 각각 사진 속의 한 점으로 사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삼차원 공간이 사진기에 의해 이차원 사진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한 차원이 줄어들게 되므로 사진기를 보던 시선은 한 점으로 변환되고 만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 한 점이 사진 속에 있는 인물의 눈동자와 황반(망막의 중심점)이 겹쳐진 이중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점에서 나오는 모든 직선은 사진 속 인물의 시선이 되는 것이다. 다시 얘기해서 사진 속의 인물은 모든 방향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가 어느 위치에서든지 사진 속의 이 이중점을 쳐다보게 되면 우리의 시선과 그 인물의 시선이 겹쳐지게 되어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기이한 현상의 수학적 핵심은, 서로 다른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하나밖에 없지만 두 점이 겹쳐진 이중점을 지나는 직선은 무한개나 된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사진 속의 인물이 어디서나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그러면 오른쪽 사진의 여인은 어떠한가? 아무리 옮겨가며 쳐다봐도 이 여인과 눈을 맞출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이렇다. 한 사람이 사진기를 쳐다보지 않을 때 그의 사진을 찍으면 사진 속 인물의 눈동자와 황반은 겹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한 직선만 되는데, 불행히도 그 직선은 사진이 놓여있는 평면 속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진 속 인물과 눈을 맞출 수는 없고, 억지로나마 시선을 마주치려면 부득이 우리의 눈을 사진이 놓여있는 평면 위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사진을 쳐다보면 사진 속의 인물은 일차원의 선으로 보이게 되어 우리에겐 아무 의미가 없고 보이지도 않게 된다.

이상의 기이한 현상들은 삼차원의 인간을 이차원의 사진 속으로 무리하게 투영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차원의 변화가 문제인 것이다. 이차원적 인간의 삶에 대하여 Edwin Abbot 가 지은 'Flatland' 라는 고전이 있다. 이 책은 이차원 인간의 한계와 특성을 삼차원 인간의 현실과 비교하며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삼차원 인간이 이차원 인간에게 삼차원 공간의 성질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만 난관에 봉착한다. 그 중의 하나로서 삼차원에서는 이차원 인간의 내부까지 볼 수 있다고 하자 처음에 이차원 인간은 이를 믿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중에 이차원 인간은 삼차원을 방문하여 어마어마한 차원의 비약을 경험하고 나서 드디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차원 인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차원 공간으로 진입하여 삼차원 인간의 뱃속을 구경하겠다고 요청한다. 그러나 삼차원 인간은 오히려 이에 당황하여 그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처럼 인간은 자기만의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어하며, 시야를 넓히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 고차원으로의 진입을 인간은 어려워 하지만 그래도 저차원은 나름대로 체계적인 이해를 할 줄 안다. 모든 인간들은 시간과 공간이 합쳐진 사차원 시공간에 살면서 사차원적 현상이 삼차원, 이차원, 일차원적 정보로 바뀌어도 이것을 잘 분류, 해석하며 능숙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삼차원 공간 속의 인물을 이차원 사진으로 찍다보니 정보처리에 무리가 생긴 것이고, 그래서 사진 속의 인물이 어디서나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전위적 전문지 제3의 텍스트 제2호 게재(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