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과학원에서


2002년 여름 나는 연구년을 맞아 스탠포드 대학을 1년간 방문하였다. 14년 동안 계속 가르친 뒤 처음 맞는 안식년이었다. 그러던 만큼 나는 강의휴가에 목말라있었고 연구전념의 기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스탠포드에서 꿈같은 1년을 보냈다. 이 안식년은 내 자식들의 인생에서 변화의 씨앗이 되었고, 학자로서의 내 인생에도 영향을 끼쳤다.

누구나처럼 나도 안식년을 알차게 보냈다. 원하던 대로 연구에 진전이 있었고 학문생활에서 다양한 자극도 받았다. 그런데 사실 스탠포드에서 연구에만 전념한 것은 아니었다. 선형대수 과목을 두 쿼터 동안 반복해서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강의는 내게 부담이 되지 않았고 기분전환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쨌건 마음껏 연구만 하며 보낸 그 일년은 내게 소중한 한해였다. 그리고 스탠포드를 떠날 때는 아쉬움 속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따져보면 연구에만 전념하며 보낸 기간은 오래 전에도 있었다. 15년 전, 학위를 받은 지 이태 째 버클리의 수학연구소 MSRI에 일년간 포스트닥으로 있었다. 유별난 도시, UC Berkeley 수학과 옆, 쾌적한 연구환경 속에서 나의 특성이 담긴 수학을 구축하며 보낸 한 해였다. 그렇지만 그때는 어려움도 있었다. 연구를 즐기던 전반부와는 달리, 연구에 진전이 없자 갈수록 스트레스가 쌓였던 후반부 때문이었다. 흔히들 말하길 그럴 땐 가르치는 것이 도피처라고 한다.

스탠포드에서 돌아온 뒤 나는 이년 동안 예과 과장을 맡게 되어 의예과, 치의예과, 수의예과 학생들을 책임지게 되었다. 행정적인 업무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덕분에 강의부담이 줄어들어서 두 학기 중 한 학기는 한 과목만 가르쳐도 되었다. 그래서 다행히 그 학기에는 연구를 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두 과목을 가르쳐야하는 다음 학기였다. 강의준비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나로서는 그저 연구문제를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었다. 젊었을 때는 강의와 연구를 병행해서 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그것이 쉽지 않았고, 내버려둔 연구문제가 갈수록 쌓여가기만 하였다.

여기서 나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강의부담이 경감될 때를 아쉬워하다보니 강의를 하지 않던 스탠포드 시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또 연구만 하던 MSRI 시절이 그리워졌다. 은퇴할 때 까지 열세해가 남았는데 이런 식으로 마냥 연구를 미루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강의 양이 부담스럽다고 과연 가르치는 일의 즐거움을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MSRI에서는 연구만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가?

오랜 고심 끝에 나는 고등과학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연구에 전념하고 싶어서였다. 이런 결정을 내릴 때 서울대를 떠나는 것이 어려웠고, 학생들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기로 마음먹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Rice 대학에서 2년, 포항공대에서 8년, 서울대에서 8년, 그리고 해군사관학교 교관근무 4년을 합쳐 모두 스물두 해 동안 가르친 것으로 자족하기로 하였다.


그런 뒤 고등과학원으로 옮긴지 석 달이 되었다. 그동안 새 환경에 알맞게 적응해왔으며 아울러 전부터 미뤄둔 연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 가끔 과거에 수업하며 학생들과 즐거웠던 분위기가 아쉬워지기는 한다. 그러나 그런 수업을 준비하기위해 할애해야했던 그 많은 시간을 즐겁게 연구하며 보낼 수 있게 됐다는 것으로 큰 위안을 삼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 고등과학원 IAS에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해 유명한 Andrew Wiles가 있다. 그는 한 학기는 프린스턴 대학 수학과에서 가르치고, 나머지 학기는 IAS에서 연구에 전념한다. 그가 IAS에만 있지 않는 이유는 이러하다. 학부생이 물어온 질문은 거의 답할 수 있으나, 대학원생의 질문에는 일부만 답할 수 있고, 포스트닥이 묻는 것은 모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고등과학원에 있으며 일년에 한 학기만 한 과목을 가르칠 수 있다면 연구생활에 좋은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없더라도 나는 앞으로 고등과학원에서 잘 지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IAS에 36년간 재직한 Armand Borel이 얘기한 바에 의하면, IAS는 애초에 소수의 정예학자와 잘 선발된 여러 포스트닥들이 연이어 좋은 논문을 써내는 곳이어야 한다는 다소 로맨틱한 예상 속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Einstein, Weyl, Veblen은 곧 이런 이상적 견해에 수정을 가해, IAS는 재직원들의 연구활동을 진작하는 것 못지않게 수학/물리학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주로 방문학자들의 활기찬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애초에 IAS도 박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기관으로 시작했으나 그동안 한번도 수여한 적이 없다. 오직 포스트닥 이상의 사람들이 연구훈련하는 기관으로 남아있다.

나는 서울대에 있을 때 답답한 적이 있었다. 작년 한때 서울대 폐지론이 심심찮게 거론될 때 그러했다. 서울대 폐지론이 나온 것은 우리 사회에 그만큼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많은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를 찾아내지 못한 나머지 서울대 폐지론, 또는 국립대학 통합론이 나왔다고 본다. 내가 고등과학원에 있으며 하는 일도 사실은 이 사회가 창의력을 키우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IAS에서 연구활동을 하며 지냈던 물리학자 Infeld가 “IAS는 손을 뻗으면 어디서나 수학 정리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곳이다”라고 설파하였다. 나는 우리 고등과학원의 어디에서 이렇게 연구성과를 쉽게 얻을 수 있는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 연구실에서는 그런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볼 꿈을 갖고 있다. 이 꿈을 실현하기위해 오늘도 나는 책상위에서 문제 풀기에 골몰하고, 문제해결의 벽에 부딪히면 칠판 탁자 책꽂이를 빙빙 돌며 색다른 아이디어를 모색해본다. 이런 과정이 쌓이다보면 창조적인 공간이 곳곳에 만들어지리라 희망하고 있다.

(2006년 6월 씀; 2006년 고등과학원 Newsletter 여름호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