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을 동경하며

최재경 (고등과학원)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사람은 죽는다는 것은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는 엄정한 사실이다. 그런 유한한 인간이 감히 무한을 체계적으로 꿈꿔본 적이 있다. 그런 적이 인류 역사상 크게 세 번 있었다.

첫 번째 꿈은 바벨탑의 전설로 성경의 창세기(11:1-9)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었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 동산에서 나와 자손을 퍼뜨렸다. 그리고 노아의 대에 이르러 대홍수가 난 뒤 그의 후손들은 번성하고 온 땅에 퍼졌다. 세상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주하다가 시날 지방에서 한 벌판에 다다르고 거기에 자리 잡고 살았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 단단히 구워 내자.” 그리하여 그들은 돌 대신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 역청을 쓰게 되었다.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이 내려와 사람들이 세운 성읍과 탑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저들은 한 겨레이고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일 뿐, 이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 하나님은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성읍을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 하나님이 거기에서 온 땅의 말을 혼잡하게 하였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꿈은 자연수의 무한공리이다. 옛날 아주 먼 옛날 동쪽으로 이주하던 사람들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숭배하였다. 그들은 어느 날부터인가 새로 뜨는 해를 세기 시작하였다. 그날 뜨는 해는 1, 그 다음 날 뜨는 해는 2, 또 그 다음 날 뜨는 해는 3, 4, 5, 6, 7,….. 이렇게 아침에 뜨는 해마다 숫자가 탄생되었다. 그때 생긴 숫자에는 모두 다음 숫자가 따라온다. 왜냐하면 태양은 다음 날 꼭 다시 떠오르니까. 늘어나는 해의 숫자를 모아가던 사람들은 그 숫자가 한없이 늘어갈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씩 늘어나는 숫자는 무한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무한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 시초이다. 이렇게 인간에게 무한이 다가오게 되는 과정에는 사실 인간 서로간의 약속이 필요했다. 즉 자연수의 집합은 무한하다고 보장하는 공리가 필요하다. 유한하지 않은 것을 무한이라고 부르며, 무한한 집합으로 존재한다고 인간 스스로가 약속한 것이 자연수의 집합인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소극적인 약속을 통해서 밖에 도입할 수 없는 것이 자연수의 무한성이다. 유한하지 않은 것에 불과한 무한이 바로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끝없음인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인간이 간접적으로 정의한 무한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때문인가? 인간의 논리에서는 모든 진리가 옳다고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괴델은 보였다. 다시 말해서 증명할 수 없는 참된 진리도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꿈은 평행선의 공리이다. 옛날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3:4:5 길이의 세 끈으로 만든 삼각형의 직각을 써서 튼튼한 집을 지었다. 이 끈으로 사람들은 직사각형 모양의 땅을 구획정리 하고서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직사각형의 두 맞변은 서로 평행하다. 과연 두 변을 무한히 확장하면 서로 만나지 않고 평행선을 이룰 것인가? 이것을 증명하려고 2천년간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였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은 이 사실이 평행선의 공리이어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공리라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평행선의 공리를 부정해도 상관없는 공간, 즉 비유클리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로 평행하게 출발한 두 직선은 만나지 않고 계속 멀어지는 공간이 있는 반면, 평행하게 출발한 두 직선은 반드시 만나게 되는 공간도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너와 내가 함께 동쪽을 향해 곧장 걸어가면 무한히 사이 좋게 걸어갈 수 있는 유클리드 공간은 인간의 머리 속에 추상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은 슬픈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공간은 비유클리드 공간이어서 두 사람이 무한히 사이 좋게 평행하게 전진할 수는 없다.

바벨탑을 쌓아 하늘까지 닿으려던 인간의 꿈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좌절되고 언어가 수백 개로 늘어나 인간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1,2,3,4,… 의 자연수에 다음 수를 끝없이 추가할 수 있다는 논리로 무한을 도입한 시도에는 불충분함이 있어서 인간의 논리에는 증명할 수 있는 진리뿐 아니라 증명할 수 없는 진리도 있게 되었다. 너와 나 사이 좋게 앞으로 끝없이 가려던 인간의 꿈은 그야말로 꿈에서만 가능하게 됐고 현실에서는 블랙홀에 빠지거나 우주의 끝에서 더 이상 못 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인간의 언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아름다운 언어가 수백 개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증명할 수 있는 진리는 증명하고 나면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증명할 수 없는데도 참이라니, 신비롭기만 하다. 너와 내가 끝없이 사이 좋게 앞으로 갈 수 없어도 좋다. 이 우주의 끝을 향해 유한한 시간 동안 한번 유랑해 보자.

우리는 십 년 후에도 살아 있을까?
내년에는 멀쩡할까?
불확실한 미래야 어찌됐든
이 에덴 동산에서 오늘을
그럭저럭 꾸려나가 봄이 어떠하리…


(2014년 9월 씀, 2014 국제현대미술특별기획전, 매트릭스: 수학_순수에의 동경과 심연, 도록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