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과 강의평가


작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 라이스대학에서 두 통의 편지가 나에게 날아들었다. 한국에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때, 두 달 전까지 가르치던 수학과에서 온 뜻밖의 편지들은 갑자기 떠나게 된 그곳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기억들을 한동안 내 머리 속에서 맴돌게 하였다.

첫째 편지는 내가 그 전 학기에 가르쳤던 4학년 위상수학 과목의 학생 K가 보낸 청첩장이었다. 그가 라이스대학 수학과로 보낸 것이 한국으로 다시 전해진 것이었다. K는 평소에 말이 적었지만 수업은 열심히 들었던 물리학과 학생이었다. 또 다른 학생 S와 함께 K는 나도 푸는 데 힘들었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문제들을 풀어내면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었다. 그는 라이스에서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NSF 대학원생 장학금을 받고, 버클리 등 몇 개 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았는데 약혼녀도 입학허가를 받은 코넬대학의 물리학과로 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 왔을 때 나는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얘기했고, 앞으로 그가 어떤 물리학자로 커 가는지 지켜보겠다고 얘기해 주었다. 결혼식은 내가 라이스를 떠난 직후였는데 만약 참석했더라면 나에게도 즐거운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위상수학 과목은 2명의 대학원생을 포함해 모두 8명이 수강하였다. 여기서 잠시 이 학생들의 얘기를 해 보고 싶다. 위상수학은 내가 많이 알지는 못 했지만 가르쳐 보고 싶었던 과목이었다. 그만큼 준비도 많이 해야 했고, 학생들이 잘 따라와서 즐거웠지만 덕분에 내 연구 시간은 많이 빼앗겼다.

이미 이야기한 학생 S는 2학년생이면서도 위상 수학을 들었는데, 그는 Putnam 수학 경시 대회에서 3위를 한 라이스 수학과 대표 세 명중 하나였다. 자기 할아버지도 라이스 대학 수학과 교수였다는 S는 장차 순수수학을 전공하겠다며 여러 가지 질문을 하러 내 연구실에 가끔 찾아오곤 하였다. 한번은 정수론의 素數정리에 대한 증명을 자기 나름대로 미흡하게나마 생각해 본 게 있다며 찾아 와서 나에게 설명해 준 적도 있었다. 아마도 S는 장차 나름대로 훌륭한 수학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또 가끔 찾아오던 학생 J는 인상적이었던 게 중간고사를 백지로 낸 것이었다. 자기 말에 의하면 애인이 갑자기 떠나서 큰 충격을 받아 의사의 도움까지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J는 또 시간에 쫓길 때 가장 일이 잘된다며 48시간 제한인 시험을 처음 40시간 동안 풀지 않고 있다가 막판에 급히 풀어 제출했었다. 자기는 수학에 별로 재능이 없다며 앞으로 뭘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그해 여름방학 동안은 휴스턴시의 10년 후의 교통발전 계획을 수립하는 연구그룹에서 컴퓨터 조수로 일하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통계학을 대학원에서 전공하겠다는 학생 R도 있었다. 그는 꾸준히 청강을 하였는데, 장차 자기가 혹시 통계적 위상 수학이라는 학문을 새로 만들어 내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느냐며 익살을 떨었다. 한번은 R이 찾아와 자기가 다음주 대학원 과목에서 처음으로 세미나를 하게 됐다며 초조한 기색을 보이길래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준 적도 있었다.

수리논리학을 전공하겠다는 학생 W는 위상수학자 Brouwer가 수학기초론에 빠진 나머지 자신의 유명한 부동점 정리마저 부정한 사실에 무척 흥미 있어 했다. 그는 Godel의 논리학에 대해 얘기하곤 했는데, 나는 그의 이야기를 그저 듣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괴팍했던 학생 N이 있었다. 그는 생김새와 행동방식도 특이했지만 수업시간에는 기발하며 이상한 질문만 했다. 3학년 학생으로서 조기 졸업한 그는 K처럼 NSF 대학원생 장학금을 받아서 펜실바니아 대학으로 갔는데, 앞으로 Nonstandard Analysis를 전공하겠다고 했다. 과연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스에서 온 둘째 봉투엔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의 강의평가가 들어 있었다. 미국 대학에서는 학기말에 학생들이 교수의 가르침에 대한 평가를 한다. 이 평가는 교수의 강의방식을 개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매 학기말 학생들의 성적을 제출한 후 나는 강의평가를 궁금한 마음으로 읽곤 했었다. 미국에서의 그 마지막 두 과목의 강의평가가 나에게 배달돼 온 것이었다. 이번에도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읽는 동안 마음은 설레었다. 해가 갈수록 영어로 가르치는 게 익숙해지니까 학생들의 강의평가는 이번에도 그 전 학기보다 좋아졌다. 물론 전부터 지적되던 나의 결점은 이번에도 지적되었고, 또 불만을 터뜨리는 학생도 몇몇 있었다. 학생들의 평을 다 읽고 보니 힘들었던 지난 학기의 보람을 뒤늦게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일년이 지난 지금도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학생들이 강의평가를 익명으로 작성하지만 위상수학 과목의 학생들은 수가 적어서 내가 그들의 필적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괴팍한 학생 N의 강의 평가였다. 그의 말인즉슨, 나의 과목에서 많이 배우긴 했으나 위상수학의 오묘하고 깊은 맛을 보게 할 정도로 멋진 강의는 아니었다고 했다. 내가 위상수학을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평가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N의 그 다음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위상수학 강의에 대학원 여학생 A가 있었는데 그녀는 UCLA를 졸업하고 남편 따라 라이스에 왔으며, 대수학을 전공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라이스 수학과에는 대수학 전공의 교수가 최근에 은퇴하여서 A는 아마도 위상수학을 전공하려고 심각하게 생각했을 는지도 모른다. A는 나에게 질문하러 두어 번 찾아 왔고, 역시 그녀는 대수학을 남보다 많이 알고 있다며 강의할 때 느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데 N의 얘기로는 그녀가 나의 강의를 듣다 좌절한 나머지 대학원을 포기하고 취직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N은 내가 A를 수학전공으로 이끌어 주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 비판하였다.

그의 논리에 일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영국의 수학자 Atiyah는 평소에 이런 말을 했다. 자기는 대학원생들이 되도록이면 수학을 포기하게끔 강의를 어렵게 하고, 또 수학의 힘든 점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데도 수학을 계속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조금은 남게 되는데, Atiyah는 그때부터 남은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가르쳐 수학 연구생활의 길로 인도한다고 고백했다.

수학탐구의 길은 힘든 일로 점철된다. 다른 자연과학처럼 논문이 자주 써지는 것도 아니고 졸업 후의 직장이 많은 것도 아니다. 수학은 재미있는 것이지만 인생에는 그만큼 보람을 느끼며 해볼만한 게 수학 말고도 많이 있는 것이다. 부디 N의 얘기처럼 A가 나를 탓하며 대학원을 떠나지는 않았기를 바라고, 그녀가 지금은 마음에 드는 직장을 구해서 보람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기를 기원한다.

나와 함께 위상 수학을 공부했던 학생들이 10년 후에는 어떻게 성장할지 매우 궁금해진다.

(1991년9월12일 씀; 1991년 10월 10일자 포항공대신문 효자隨想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