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기다리며(*)


“배 들어왔니?”
대학원 재학중 수학과 복도에서 가끔 만나던 선배는 거두절미하고 나에게 대뜸 이렇게 물어보곤 하였다. 학위논문 문제를 풀기 위해 끙끙대던 시절이었는데 나에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중요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느냐는 뜻의 물음이자 인사말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얼굴이 누래 가지고 두 눈의 초점이 허공에 떠있던 채로 수학과를 오가던 나에게서 어떤 대답이 나오리라고 그 선배는 물어보기도 전에 알았으리라.

어느 날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배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지도교수가 방문중이던 근처의 학교로 한 시간 차를 몰고 달려갔다. 한 30분간 나의 아이디어에 대한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던 지도교수는 내 말이 끝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를 낙담시키고 싶지 않지만 그 문제는 이미 지난주에 두 수학자가 더 좋은 아이디어로 풀었다고 연락해 왔다네.”

그 후로 나는 다른 배를 기다리게 되었다. 지도교수는 이곳 저곳을 방문하며 다녔다. 그런 지도교수를 쫓아 나는 가족을 데리고 짐 꾸리기에 바빴다.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면서도 어디서 배가 들어오지 않나 항상 기다리던 나날이었다.

그리던 배가 나를 향해 미끄러져 들어오던 것은 북극에 가깝고 옛날 옛적 해적들이 모여 살던 곳에서였다. 그 당시 지도교수와 나와 동료들과 가족들이 그 멀리를 방문하고 있었다. 백년 가까이 수학자들이 기거하고 문제를 풀고자 노력하며 거쳐가던 곳이었다. 그 곳의 고색창연한 연구실, 도서실, 숙소에서 같이 갔던 동료 학생들과 공부하며, 얘기하며, 술 마시며, 커피 마시며, 밥 해먹으며, 산책하며 지내는 동안에 나의 배는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나도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생이 얼마나 짧은 것인가 아쉬워하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었었다. 그 중에 유난히 기억나는 게 있다. 인생을 살면서 헬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접하지만 그 중에 진정한 만남이었다고 꼽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몇이 안 된다는 글이었다. 나도 비슷하게 인생의 짧음을 얘기하고 싶다. 수학자의 인생은 왜 짧은가? 평생 수학책과 논문집에서 수많은 정리와 정의를 읽게 되지만 그 중에서 자기가 처음 만든 것은 몇이 안되기 때문이다.

학위논문의 배가 들어와 졸업을 하게 된 이후에도 나는 그 이전처럼 또 다른 배를 기다리며 지내왔다. 그 동안 일 년에 한번쯤 배가 들어와 나의 연구실에다 짐을 풀었다. 뜸하게 들어온다고 애태우며 지내던 시절도 많았다. 배가 나의 항구로 들어오는 듯 하다가 다시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허탈감에 빠진 적은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배를 기다리러 포구에 나가는 나의 마음은 가벼워진다. 배가 들어오건 않건, 들어오는 배가 크건 작건, 매일 내가 할 일은 나의 포구를 넓히고, 먼 수평선을 담담히 바라보고, 아름다운 진리의 배를 꿈꾸며 내 바다의 삶을 즐거이 꾸려나가는 것이리라.

(*) When one's ship comes in. = When one has become successful.
(1993년10월31일 씀; 1994년 포항공대 수학과 학생회誌 무한대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