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로키 산맥의 추억

오래 전 내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을 맞이했을 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영화 ‘의사 지바고’가 처음 상영되었다. 그때 70mm 영화를 상영할 수 있었던 영화관은 서울시 퇴계로의 대한극장이 유일하였다. 감수성이 매우 예민하던 때 노벨 문학상 소설을 토대로 만든 대작 영화는 내게 오래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남겼다. 나이어린 유리 지바고가 어머니를 무덤에 묻을 때 슬픈 얼굴로 둘러보던 웅장한 산의 새하얀 눈이 덮인 풍경. 지바고 가족이 혁명 와중에 모스크바를 떠나 바리키노로 가던 중 우랄산맥에서 철길에 수북이 쌓인 눈을 헤치며 달려가던 기관차. 한겨울 얼음에 뒤덮인 바리키노의 저택 유리창에 핀 아름다운 얼음 꽃을 보며 시를 쓰던 지바고. 빨치산의 억류에서 도망쳐 눈 덮인 광야에서 가족을 찾아 헤매던 지바고를 화면으로 보며 함께 느껴지던 추위...

그 겨울 이후 나는 눈, 얼음, 추위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한번은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20도인 적이 있었다. 그때 양평의 한 가게에서는 저장해둔 소주병들이 얼어 터졌다고 했다. 그때가 내가 겪은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근년에 접어들어서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갈수록 겨울 추위의 매서움을 겪을 기회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가끔 추운 나라에서 전해지는 영하 2-30도의 기온소식을 들으면 그런 곳에 한번 가보고 싶어 하곤 하였다. 그러던 차에 지난 봄 나에게 캐나다 로키산맥의 소도시 밴프(Banff)에서 12월 극소곡면 학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왔다. 만사 제쳐두고 참가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밴프는 의사 지바고 영화의 우랄산맥 부분을 촬영한 곳이 아닌가.

캐나다 로키산맥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였다. 밴프에 도착한 다음날 내가 발표하기로 돼있는 논문의 일부를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인천공항으로 향하기 직전 발견된 것이다. 20시간의 여행길은 강연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잠시 쉴 수 있었던 것은 비행기 좌석에 꼭 갇힌 채 식사할 때와 윤동주의 시에 관한 프로그램을 내 좌석 화면으로 볼 때였다. 시애틀에서는 캘거리 행 비행기의 좌석이 정해지지 않아 대기자 명단에만 올라있어서 애를 태웠다. 다행히 마지막 한자리를 얻어 프로펠러 비행기에 간신히 몸을 싣게 되었다. 캘거리에 도착하니 공기가 매우 차가왔다. 미리 예약한 셔틀버스를 공항에서 타고 두 시간을 가 목적지 밴프에 도착하였다.

북아메리카의 서부를 종단하며 캐나다에서 미국에 이르는 4800 킬로에 걸친 산맥이 바로 로키산맥이다. 이중 캐나다의 앨버타 주와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의 경계를 이루는 캐나다 로키산맥은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에서 단연 압권을 이룬다. 이곳을 지나는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하던 인부 세 명은 밴프에서 온천을 발견하는 횡재를 얻었다. 이들이 이곳에서 온천영업을 시작하자 캐나다 정부는 개인사업을 금지시키고 이 지역 로키산맥을 인류공동의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1885년 밴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이 도시에 위치한 밴프 센터는 ‘창의성의 고취’(inspiring creativity)를 모토로 하여 음악, 미술, 문학, 연극, 과학 등의 분야에서 공연, 교육, 학회, 소모임 등을 여는 세계적인 만남의 장소이다. 이곳 안에 북아메리카의 수학자들이 그룹별로 매주 닷새 동안 모여 숙식을 같이 하며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밴프 국제수학연구소가 위치해 있다.

연구소의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뒤 강연준비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여행한 뒤 쌓인 피로 때문에 잠을 청했으나 시차로 인해 세 시간 만에 깨고 말았다. 다시 강연준비를 하고나서 아침식사를 하러 카페테리아로 갔다. 곧 학회참석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그중 오랜만에 만난 지기도 있어 그간의 얘기를 서로 털어내며 아침식사를 하였다. 첫 강연은 ‘제임스’가 하였다. 그는 몇 년 전 암수술을 받았으나 암이 재발하여 올해 재수술을 하였다. 지난여름 그의 환갑기념을 겸한 브라질 학회에 나도 참석하였으나 수술 후 회복 중이었던 그는 정작 오지 못했다. 밴프에서 예상보다 건강해 보이는 그를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으나 그의 얼굴은 전보다 수척해 보였다. 그는 강연에서 회전계단 모양의 극소곡면 ‘헬리코이드’에 핸들을 붙이는 이론에 관하여 발표하였다. 강연 끝에 자기가 지난 15년간 연구하던 것과 색다른 결과를 얻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번 연구의 성취감은 그가 암 투병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을 것이다.

둘째 강연은 내 차례였다. 나는 최근에 얻은 세 가지 결과에 관해서 발표하였다. 다각뿔 안에 있는 곡면이 모세관 현상에 의해 동그랗게 되는 경우에 관한 연구였다. 다행히 강연 직전까지 애를 쓴 끝에 내 강연은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나의 차례를 일찍 끝냈으니 이제부터는 여유 있게 학회를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점심식사 후 밀려오는 피로를 풀기위해 내방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어제 밤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벽에 걸린 사진이 전에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 방 아래층의 라운지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를 듣고 보니 어제 밤 데자뷔 느낌의 원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방이 바로 4년 전 내가 묵었던 방인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일 년 간 스탠포드 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안식년이 끝나던 7월 중순에 학회 참석차 닷새 동안 밴프를 처음 방문하였다. 연구소 숙소에서는 두 사람이 방 두개와 화장실 하나를 사용한다. 그때 내 룸메이트는 ‘체페’였다.

체페는 4반세기전 나와 같은 지도교수 ‘릭’ 밑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이다. 그는 나보다 일 년 먼저 대학원에 입학한 콜롬비아 유학생이었다. 체페도 나처럼 유학 올 때 아내를 동반하였다. 유학 5년째 우리는 논문연구가 한창이던 중요한 때 지도교수가 석달간 유럽을 방문하게 되어 우리도 따라가기로 하였다. 릭, 체페, 나는 모두 가족들을 동반하였고 두 명의 총각학생도 동행하였다. 두 달 동안 스웨덴의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연구소 숙소의 한 저택에서 우리 학생들과 그 가족은 공동생활을 하였다. 거기서 우리는 같이 밥을 해 먹었고, 커피를 마시고, 포도주를 마시며, 총각 때의 무용담을 서로 들려주며 북구의 신비한 밤이 깊어가는 것을 즐겼다.

체페는 외모와 행동에서 학자와 거리가 먼 인상을 풍겼다. 그는 콜롬비아 다이빙 국가대표 선수였다. 축구도 잘해 나와 같이 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는 인디오 출신인 어머니를 닮았으나 백인 아버지를 닮은 그의 형은 미국 동부 유명 주립대 인류학과의 학과장으로 있었다. 그는 미국을 입국할 때마다 마약 딜러로 오인되어 공항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성격은 매우 사교적이어서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는 좌중을 즐겁게 해주곤 하였다. 그는 내가 학위를 받은 지 사년후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겠다고 하자 고국이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좋다는 게 부럽다고 내게 말하였다.

대학원 시절에 체페와 같은 위기를 경험한 학생은 드물 것이다. 그는 대학원을 다니던 도중 후두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인근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강력한 항암치료 덕분에 병마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받은 방사능 요법은 후유증을 남겨 영영 이세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체페는 이런 불행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암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안을 끈질기게 찾아나서는 것에 몰두하였다. 자기 앞의 운명을 철저히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던 그는 좋은 학위논문으로 졸업하고 훌륭한 후속 논문도 발표하며 유명한 연구비를 타더니 결국은 코넬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체페는 스칼라곡률을 상수로 변형시키는 ‘야마베’ 문제를 경계 있는 리만다양체에서 해결하여 유명해졌다. 하지만 첫 아내와는 이혼하게 되었다.

학회 첫날을 끝낸 우리는 카페테리아의 너덧 테이블에 모여 앉아 맛있는 저녁을 들었다. 우리 테이블에서는 서로 뜻이 맞아 포도주를 시켜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말리’가 말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논문의 인용횟수에 따라 교수의 업적을 평가하고 있어.”
많이들 신기하다는 듯 말리를 쳐다보았다. ‘징이’가 거들었다.
 “그러면 우리가 네 논문을 많이 인용해 줄께.”
모두 웃었다. 그러자 말리가 맞장구 쳤다.
 “그래? 그럼 내가 포도주를 또 사지.”
학회 첫날 밴프의 밤은 포도주와 함께 영글어갔다.

4년 전 밴프 학회에서 체페를 보기 넉달 전에는 내가 체페를 만나러 코넬 대학을 방문하였었다. 스탠포드에 안식년 차 와있던 나에게 체페는 코넬에서 세미나를 하라고 불렀다. 코넬 대학이 있는 이타카 공항에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가 도착할 때 바람이 심하게 불며 비행기가 흔들려 내 손과 발은 땀에 젖었다. 체페가 마중 나왔다. 7년 전 포항으로 나를 방문했을 때보다 나이가 많이 들고 수척해 보였다. 그의 콘도미니엄 거실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또 포항의 술집에서 우리가 재미있게 보내던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는 건강 얘기도 하였다.
 “내가 대학원생 때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담당의사가 말했어. 강력한 방사선 요법을 받았으니 20여년 후에 다른 암을 조심해야 된다고. 결국 3년 전에 나는 위암에 걸려 위의 반과 식도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지. 요즘 나는 제산제 없이는 잠을 자기 힘들어. 반년에 한번 씩 독일에 가서 대체요법치료도 받으며 위암 치료방법에 대해 많이 연구도 해봤지.”

체페를 정작 힘들게 하는 것은 그의 둘째 아내 ‘미리엄’과의 별거생활이었다. 미리엄은 체페가 콜롬비아에서 데려온 코넬 대학원생이었다. 체페와 잘 지내던 그녀는 체페가 두 번째의 암 투병을 하고 있을 때 그를 떠났다.
 “미리엄이 떠나는 이유를 내게서 아이가 생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거짓말이야. 결혼 전에 내가 그 사실은 다짐받았었거든.” 체페가 우울하게 말하였다.
다음날 아침 학교로 가는 길에 우리는 우연히 미리엄을 만나 체페 차에 태우고 같이 갔다. 체페가 나를 그녀에게 소개하고 우리는 셋이서 형식적인 말을 나누었다. 나중에 체페가 내게 말했다.
 “지금 나는 미리엄의 아파트 월세를 내주고 있지. 그러나 그녀가 미국 시민권을 받는 대로 나는 그것을 중단하고 이혼하려고 해.”
이렇게 말하는 체페가 쓸쓸하게 보였다.

그날 오후 세미나 시간에 나는 상대적 등주부등식에 관하여 발표하였고 세미나가 끝난 후 체페는 내게 코넬 대학 캠퍼스 구경을 시켜줬다. 교내에 폭포가 있는 것이 특이했고 잔디 축구구장이 많은 게 부러웠다. 체페는 요즘도 가끔 축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이 축구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시간이 없구나.” 이런 내 말에 체페가 맞장구쳤다.
특이하게 건축된 박물관 건물로 가는 도중 나는 체페에게 어떻게 대학원생 때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냐고 물었다.
 “스탠포드 대학병원은 정기적으로 극빈층에게 무료 의료혜택을 제공해. 그 혜택을 받으려면 병원 측과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정해진 날 다섯 명에게만 인터뷰 기회가 주어지지. 그런데 그날 병원에 일찍 가봤더니 벌써 긴 줄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야. 하지만 뜻밖에도 앞에서 세 번째 사람이 내가 알고 있던 콜롬비아 여자이더라고. 그래서 나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가서 이야기를 꺼내었지. 그렇게 그 자리에서 한창 얘기하고 있으며 줄에 끼어드니까 뒷사람들이 불평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강변했지. 우리는 처음부터 같이 서 있었다가 번갈아 가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중이었다고.”
체페의 이런 현실적인 삶의 대처방식이 그로 하여금 인생의 험한 풍파를 헤쳐 나오게 한 것 같았다.

밴프 센터에 묵는 방문객들은 ‘비스타’라고 불리는 카페테리아에서 세끼 식사를 한다. 비스타는 4층 꼭대기에 있고 벽이 모두 유리창으로 돼있어서 이름 그대로 밴프의 웅장한 산세를 감상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학회 둘째 날 새벽 비스타로 향하는 길은 영하 17도의 매서운 공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추위를 고대했던 나는 오랜 만에 접해 보는 찬 공기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캐나다 로키산맥을 넘어 동 사면으로 부는 치누크 바람의 영향으로 동위도의 다른 도시보다 밴프는 따뜻한 편이다. 치누크 바람은 높새바람과 같은 푄현상을 일으키므로 나와 같은 방문객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바람이었다.

내가 묵고 있는 방의 일인용 소파에 4년전 체페가 앉아 있던 게 생각났다. 그때 그는 말했다.
 “어젯밤 네가 대학에서 연구소로 옮기는 꿈을 꿨어.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게 꿈에서도 부러웠지. 그러나 경쟁을 심하게 하는 곳보다 네가 행복할 곳에 가야 돼. 행복해야만 논문도 많이 씌어지는 게 아니겠어? 필즈 메달(수학의 노벨상)을 받은 스웨덴 사람 ‘회르만더’ 얘기 아니? 그는 프린스톤 고등연구소에 있다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곳이라 싫다고 스웨덴 대학으로 옮겼어.”
그의 꿈대로 나는 이태 후 연구소로 이직하였다.

학회 둘째 날 ‘유’와 ‘조엘’이 내가 발표한 것 중 세 번째 결과를 더 쉽게 증명하는 방법을 내게 알려주었다. 나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조엘 한테 내가 학생에게 줄 연구문제거리를 얘기했더니 그는 그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촌평하였다.
 “글쎄, 정말 그럴까?” 그가 잘못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 테이블에는 극소곡면론의 대가 ‘빌’이 함께 하였다. 올해 환갑인 그는 저녁 두 시간 내내 열정적으로 떠들었다. 어찌하여 관심 있는 문제가 그리 많으며 무슨 에너지로 줄기차게 한 분야를 파고 있는지 내게 경외감만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다. 빌은 두 평면 사이에 있는 극소곡면이 핸들을 갖지 않을 조건에 대하여 유명한 예상을 제기하였다. 그의 예상은 내게 큰 흥밋거리였었다. 빌이 나에게 물었다.
 “릭하고 연구하는 문제 어떻게 돼가니?”
4년 전 밴프에 처음 올 무렵 릭과 나는 극소곡면의 등주부등식 문제에 대해 같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철사를 비눗물에 담갔다 꺼낼 때 생기는 비누막이 바로 극소곡면이다. 같은 길이의 철사가 만드는 비누막 중에서 가장 큰 넓이를 갖는 비누막은 철사가 원일 때인가? 이것이 극소곡면의 등주부등식 문제이다. 이 문제는 90년 전에 제기되었으나 지금까지 일곱 가지의 부분적인 해결만 있었을 뿐 아직 일반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일곱 가지의 결과 중 최근 두 가지가 각각 1980년대의 릭과 나의 결과였다. 지난 번 밴프를 다녀간 이후 이년간 우리의 새로운 접근방법에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고, 우리는 각자 이 결과에 대해 발표하고 돌아다녀서 주위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있던 것이다. 나는 빌에게 대답하였다.
 “지금 한 아이디어가 생겼는데 우리는 내일 오후 자유 시간에 이것을 집중적으로 확인해 볼 거요.”
빌의 예상과 극소곡면의 등주부등식 문제는 내가 지난 21년간 풀려고 애쓰던 문제들이다. 인생은 짧고 수학문제는 길다고 할까? 두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다보니 나에게는 흰 머리만 늘었다.

4년 전 밴프학회 도중 릭과 나, 체페, ‘스미오’ 등 여러 명의 릭 제자들은 밴프 근처에 있는 ‘레이크 루이즈’에 소풍갔었다. 이 호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세계 10대 절경 중의 하나이다. 이 호수를 배경으로 우리는 사진을 찍고 근처의 높지 않은 산에 걸어 올라가 그곳에 있는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하였다. 그 산을 오를 때 체페는 꽤 힘들어하였었다. 이 학회가 끝난 뒤 스탠포드로 돌아오고 나서 보름 후 나와 우리 가족은 일년간의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하였다. 한국생활에 복귀하며 한 학기동안 아이들의 학업과 나의 학교생활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느 추운 겨울 날, 스미오가 이메일로 슬픈 소식을 전해왔다. 체페가 결국 죽었다고. 체페의 위암은 대장으로까지 전이됐던 것이다. 급격히 나빠지는 몸을 이끌고 체페는 콜롬비아 고향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갔다. 그때 첫 아내 ‘엘레나’도 돌아가 체페를 간호하였는데, 한 달 후 체페는 엘레나와 부모님께 하직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엘레나가 마지막 한달간 체페를 지킨 것은 감동적이었다. 스웨덴 저택에서 우리와 함께 지내던 때를 돌이켜보니 엘레나와 체페가 마지막을 어떻게 함께 보냈을지 눈앞에 선하였다.

학회 셋째 날은 오전에만 강연이 있고 오후는 자유시간이었다. 오후 내내 릭과 공동연구를 하기로 했으나 ‘잉잉’이 레이크 루이즈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릭이 운전하는 렌트카로 그곳을 향했다. 레이크 루이즈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길을 따라 얼어버린 작은 강, 끝없이 이어지는 전나무 숲, 그리고 눈과 얼음을 뒤집어쓴 산밖에 없었다. 국립공원이라서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가끔 지나가는 차뿐이었고 야생동물이 길을 가로질러 가도록 육교가 띄엄띄엄 고속도로 양쪽의 숲을 이어주고 있었다.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고속도로 가의 눈 속에 처박혀 견인을 기다리는 차 너덧 대가 보였다. 인적이 보기 힘든 곳에서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자연은 겨울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겨울에 온 레이크 루이즈는 4년전 여름에 봤던 레이크 루이즈와는 판이하였다. 호수는 꽁꽁 얼어 눈으로 덮여있었고 한 구석에는 사람들 몇몇이 스케이트를 지치고 있었다. 호수 주위의 가파른 산기슭에 서있는 나무들은 백설로 싸늘한 치장을 하였고, 바위 구석구석에 쌓인 눈은 맨살의 바위와 대조를 이루며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눈으로 느끼게 해주었고, 계곡 산기슭 저 너머의 산을 덮은 빙하는 우리가 감히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할 것 같아 보였다. 아름답고 희디흰 눈 뒤편에 살을 에는 얼음이 있었고, 빼어나고 웅장한 빙하 뒤편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4년전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던 장소에 다다르자 릭이 말을 꺼냈다.
 “체페가 죽은 지 일년 후 콜롬비아에서 체페 추모학회가 열린 것 알지? 그때 내가 발표한 첫 강연에서 나는 여기서 네가 찍은 우리와 체페의 사진을 청중에게 보여줬지.” 릭은 잠시 회상에 잠겼다. “체페가 살아있다면 그는 지금쯤 남미 수학계를 이끌어 갈 리더가 되었을 텐데...”
 “체페는 주변의 사람들과 가슴 깊이 어울렸고 항상 우리들의 흥을 돋구어 주었지요.” 나도 옛 기억을 더듬으며 한마디 하였다.

레이크 루이즈에서 밴프로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그 길 중간에 우뚝 서있는 ‘런들’산은 그 우람한 모습으로 캐나다 로키산맥을 대표하는 산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서쪽은 판판한 경사면이고 동쪽은 가파른 습곡지층으로 이루어졌는데 꾸불꾸불한 지층을 따라 쌓인 눈은 수억 년 세월의 나이테를 또렷이 보여주었다. 연구소에 돌아온 릭과 나는 오랫동안 미뤄왔던 연구토론을 시작하였다. 간 사람은 가고 없더라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연구활동을 통해 세월의 지층에 족적을 남겨야 하므로. 체페는 비록 자식을 못 남기고 갔으나 그가 쓴 논문들은 수학자들의 머릿속에 오랜 세월 남아있을 것이다.

학회 넷째 날 저녁식사 때 내 옆에 ‘아일라나’가 앉았다. 그녀는 뱅쿠버의 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차분하지만 매우 소박한 사람이다. 그것이 캐나다 사람들의 특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일라나가 내게 물었다.
 “대학에서 연구소로 옮기니 가르치던 때가 그리워지지 않니?”
 “그립지, 그립고말고.” 나는 먼 산을 보며 대답하였다.
빌도 내게 물었다.
 “어제 릭하고 토론한 것 어떻게 됐니?”
 “새로운 아이디어에서 아직까지는 틀린 점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요. 앞으로도 별 이상이 없다면 우리의 연구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텐데.”
나의 말에 빌은 미소 지으며 행운을 기원했다. ‘마리오’는 릭의 첫째 제자인데 지금 영국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고향이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인데 최근 몰타의 한 대학으로 옮기려 했으나 일이 여의치 않다며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게 몇 년 후 릭이 환갑이 될 때 기념학회를 열자며 몇 가지 상의를 하였다. 그가 며칠 전 다녀왔던 노천온천이 좋았는지 오늘밤도 간다며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으나 나는 사람들과 더 얘기하고 싶어서 남겠다고 했다.

내일 오전까지 학회가 계속되나 다음 주 중국학회에 갈 일 때문에 나는 오늘까지만 학회에 참여하고 내일 새벽에 떠나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릭과도 인사하니 그는 다음 주부터 우리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밤늦게 밴프 센터에서 시내로 발길을 향했다. 유명한 관광도시답게 중심거리는 아름답고 운치 있게 장식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늦은 시간 추운 날씨에도 거리에는 두툼한 옷으로 중무장한 행인들이 심심치 않게 지나다녔다. 나는 기념품으로 캐나다 로키산맥 사진들로 만들어진 달력을 사고 그림엽서와 초콜릿도 함께 샀다. 돌아오던 중 어두운 주택가의 호젓한 길에서 큰 사슴 한 쌍을 만났다. 나를 별로 경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길 잃은 사슴은 아닌가보았다.

학회 다섯째 날 캄캄한 새벽 나는 캘거리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둠 때문에 그동안 눈에 익은 밴프의 아름다운 산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밴프에서 멀어질수록 빛이 하나씩 모이며 산들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캘거리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로키산맥이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지평선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게 아스라이 눈에 띄었다. 캘거리 공항에서 뱅쿠버 행 국내선 비행기에 탔을 때는 해가 제법 지평선 위로 떠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한참 가고 있는데 갑자기 창밖이 흰빛으로 밝아졌다. 내 눈 아래에 흰 눈이 덮인 캐나다 로키산맥이 넓게 펼쳐진 것이다. 땅 밑에서 위로 쳐다봤을 때의 산은 힘들게나마 대화를 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산들은 저 세상의 영혼처럼 저만치 떨어진 시공에서 자기 존재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년 봄 캐나다 로키산맥에는 온갖 들꽃이 피며 생명의 향연을 펼칠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다시 눈이 쌓이고 얼음이 얼며 살을 에는 추위가 찾아올 것이다. 이런 엄동설한에도 찾아온 방문객들은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눌 것이고, 산과 들과 호수에는 이 이야기들만 남아 쌓이고 쌓인 끝에 한 켜의 지층을 이루게 될 것이리라.

(2008년 1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