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가 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최 재 경

1862년 7월 어느날 옥스포드대학교 수학교수 찰스 럿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은 친구와 함께 학장의 세 딸을 데리고 테임즈 강에서 뱃놀이를 하였다. 도지슨은 노를 저으며 세 소녀에게 모험을 찾아가는 Alice 라는 소녀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지어 들려주었다. 세 자매는 그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였는데 그 중 10살 된 둘째 딸 Alice Liddell 은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달라고 그에게 요청하였다. 2년 후 도지슨은 그 이야기를 손으로 쓰고 삽화를 직접 그려 ‘앨리스의 땅 속 모험(Alice’s Adventures Under Ground)’ 이라는 제목을 달아 앨리스에게 주었다.

그 1년 후 도지슨은 자필원고에 많은 내용을 덧붙여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 라는 필명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를 출판하였다. 처음 원고는 평범한 동화에 불과하였으나, 별도로 구상한 이야기, 즉 체셔 고양이, 법정, 공작부인, 모자장수의 다과회 이야기를 포함시켜 대폭 확대한 내용으로 출판하였다. 추가한 이야기는 알쏭달쏭한 면이 많아 독자로 하여금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한다. 이 부분에서 루이스 캐롤은 수학자로서의 재능을 맘껏 발휘한다. 책에 담긴 수학적 내용은 근래 와서야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그중 많이 알려진 해석은 옥스포드대학교 영문학 박사과정생 멜라니 베일리(Melanie Bayley) 가 2009년에 발표한 글이다. 여기서 그 내용을 소개하고 필자의 의견도 일부 덧붙여 얘기해 보겠다.

먼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요약해보자. 지루한 일상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찾던 앨리스는 회중시계를 보며 말을 하는 토끼를 쫓다가 굴로 들어가 깊이 떨어지고 만다. 굴 속에서 앨리스는 무언가를 먹고 갑자기 몸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일을 겪는다. 자신이 흘린 눈물 웅덩이에 빠지고, 버섯 위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며 자꾸 “너는 누구냐?”고 묻는 애벌레를 만나는데, 그에게서 몸 크기를 조절하는 방법을 배운다. 또 공작부인의 주방장이 후추가루를 치는 바람에 아기가 울고, 교훈만 늘어놓는 공작부인이 앨리스에게 아기를 맡기자 아기는 돼지로 변한다. 웃음을 지으며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체셔 고양이를 만나고, 3월 토끼와 모자장수, 겨울잠쥐가 모인 다과회에서 무례한 대접을 받으나, 앨리스는 그들이 낸 수수께끼를 하나도 맞추지 못한다. 크로켓 경주장에 갔더니 하트 여왕이 툭하면 아무나 목을 치라며 명령하고, 모조 거북에게서 바닷가재의 춤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 여왕의 파이를 훔친 혐의로 왕이 잭을 처형하려고 하자 증인으로 나선 앨리스는 반대한다. 몸이 커져서 아무도 두렵지 않게 된 앨리스는 입조심하라는 여왕의 말에 “너희는 그저 카드 한 벌일 뿐” 이라고 외치자 카드들이 일제히 일어나 공중에 솟구쳐 앨리스를 잡기 위해 달려든다. 마침내 앨리스는 꿈에서 깨어난다.

이 이야기에 담긴 수학적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도지슨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을 쓰던 19세기 중반에 일어난 수학의 격동적인 변화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하였고, 대수학 등 각분야의 추상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점점 많은 수학자들이 복소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에 도지슨은 실망하였다. 그는 옥스포드에서 강의(tutoring)를 전담하는, 연구와는 거리를 둔 교수였다. 유클리드 원본(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기하학)의 공리에 기반하여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의 전통적인 수학만 고집하는 도지슨을 베일리는 극히 보수적인 수학자라고 칭하였다. 그리고 도지슨이 책제목을 바꾸고 확대출판하며 추가한 부분을 수학의 격동적인 변화에 대한 심술궂은 풍자라고 해석하였다.

도지슨은 동시대 수학자들이 유클리드처럼 논리적으로 엄정하지 않았고 그들의 글과 논문에서 구어체 티가 난다고 생각했다. 더 큰 불만은 그들의 새 수학이 유클리드 원본의 근간이 되는 물리적 실재와 멀어져 간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자연수와 유리수처럼 물리적 양을 잘 표현하지도 못하는 엉터리 같은 허수를 학자들이 거리낌 없이 쓰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도지슨은 이러한 터무니 없는 수학을 학부생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수세에 몰린 도지슨은 자신의 수학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 수학에서 엉성하게 보이는 논리를 끄집어내고 유클리드의 증명에서 자주 쓰이는 귀류법을 써서 우스꽝스런 결론을 이끌어 내어 비판 대상으로 만들고 싶었다. 베일리는 이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말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관한 베일리의 의견 중 “이상한 나라의 광기는 기호대수학(symbolic algebra)이라는 새 수학의 위험성에 대한 도지슨의 견해를 반영한다”라는 주장은 가장 독특하고 난해하다. 토끼굴 속으로 떨어진 후 병에 들어있는 것을 먹고 8센티로 작아진 앨리스에게 물담배를 피우는 애벌레는 버섯을 먹고 알맞은 크기로 조절하라고 귀띔해준다. 물담뱃대와 버섯을 두고 마약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으나 베일리는 이를 언어학적으로 해석한다. Hookah(물담뱃대)라는 단어는 Algebra(대수학)처럼 아랍어에서 왔다. 기호대수학의 기초를 다진 영국 수학자 드모르간은 1849년 출판한 책 Trigonometry and Double Algebra 에서 algebra 의 아랍어 어원 al jebr e al mokabala 를 소개하였다. 이 말은 restoration and reduction, 즉 복원과 축소, 환원을 뜻한다.

기호대수학은 대수학의 모든 기호의 뜻을 폐기처분한다. 기존의 수학에서는 0 은 無이고 , 1 은 하나, +, × 는 더하기, 곱하기로 해석해왔으나, 기호대수학에서는 0, 1, +, × 를 아무 의미도 없는 기호로 보며 0 은 단지 0+a=a 를 만족하는 기호이고, 1 은 1×a=a 가 성립하는 기호일 뿐이다. 2 는 0, 1 과 같은 기본기호가 아니고 단지 1+1 이다. 그리고 +, -, ×, ÷ 는 연산기호라고 보지도 않고 그저 교환법칙, 결합법칙, 분배법칙을 만족하며 -(+a)=-a, ÷(÷a)=×a 도 만족하는 기호라고만 정의한다.

초기의 기호대수학은 물리적 양과의 관련을 간접적으로나마 남겨뒀지만, 드모르간은 이런 계량적인 관련에서 탈피해야만 하며, 이렇게 정립한 기호대수학이 기존에 우리가 알고있는 수십가지 대수학의 문법 체계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대수학을 통상적인 산수에서 ‘환원’시켜 일련의 논리적이고 상징적인 연산들로 ‘복원’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이렇게 볼 때 현대의 기호대수학은 수학적 대상 사이의 대화 도구로서 가장 정교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앨리스가 물약을 먹고 턱과 발이 닿을 정도로 ‘축소’되고, 버섯을 먹고 원래 크기로 ‘복원’되는 모든 이야기는 도지슨이 al jebr e al mokabala 를 토대로 지어냈다고 볼 수 있다. 베일리는 이런 황당한 축소와 복원을 나열하며 도지슨은 기호대수학의 터무니없음을 보이려 했다고 지적하였다. 애벌레가 앉아있는 버섯은 우후죽순처럼 자라므로 도지슨은 불쑥 나타나 수학자들을 현혹시키는 추상적인 대수학을 버섯에 비유했다는 해석도 하였다. 그리고 왕과 여왕 앞에서 머리만 나타난 체셔 고양이는 대수학이 복잡한 논리를 걸러내고 남겨놓은 추상성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한편 애벌레를 만났을 때 앨리스는 하룻동안에 키가 2.7미터에서 8센티 사이를 요동치는 게 매우 혼란스럽다고 불평하자 이상한 나라에 살고있는 애벌레는 동의하지 않는다.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애벌레로서 혼란스럽지 않겠지만 앨리스로서는 괴상스런 일이라고 말하자 애벌레가 앨리스에게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 옥신각신 다투다가 앨리스가 떠나려 하자 애벌레는 돌아 오라며 “화를 내지 마라(Keep your temper)”라고 말한다. 베일리는 이 말이 도지슨 수학의 보수성을 나타낸다고 풀이한다. Temper 는 화를 뜻하지만 균형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애벌레는 앨리스에게 키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몸은 “균형을 유지해라, 닮은꼴이 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닮은꼴을 유지하는 것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이 말은 도지슨이 유클리드 기하학만 받아들인다는 말로서 볼 수도 있다.

앨리스는 애벌레에게서 배운 대로 버섯의 한 쪽과 다른 쪽을 골라 먹으며 키가 커졌다 작아진다. 그렇게 해서 원래의 크기로 돌아온 앨리스는 한 작은 집에 들어가기 위해 버섯을 먹고 다시 작아진다. 그 집에는 공작부인과 그의 아기, 요리사와 체셔 고양이가 있다. 부엌에서 공작부인이 아기를 돌보고 있는데 요리사가 국물에 후추를 너무 많이 넣어 공작부인과 아기가 재채기를 한다. 그때 공작부인이 아기를 앨리스에게 넘기는데, 재채기 소리가 꿀꿀대는 소리로 바뀌어 놀라 다시 아기를 쳐다보니 돼지로 변해 있었다. 이 대목을 설명하기 위해 베일리는 수학자 퐁슬레(Poncelet)의 사영기하학을 동원한다. ‘연속성의 원리’에 의하면 한 도형이 연속적으로 변하고 있을 때 처음 그 도형이 갖고 있는 성질을 주어진 범위 안에서 그 도형의 연속적 변환도 똑같이 갖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두 점에서 교차하는 두 원이 서로 멀어져도 여전히 두 점에서 만난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복소수까지 도입한다면 가능하게 된다. 또한 원의 그림자를 연속적으로 변환시키면 타원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포물선과 쌍곡선도 되므로 이러한 원추곡선들은 같은 성질을 갖는다.

원에 적용되는 성질은 아기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그래서 도지슨은 연속성의 원리로 아기를 돼지로 변환시킨다. 크게 보면 아기나 돼지나 비슷하고 자세히 보면 코는 들창코이고 눈은 작기만 하다고 생각한 걸까? 작은집에서 공작부인은 무척 나쁜 엄마이고, 요리사는 제멋대로이며, 아기는 불편하기만 하다. 베일리는 이 작은 집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언짢은 상황은 새 수학 사영기하학을 도지슨이 불신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이상한 사태가 벌어지는 데 화가 난 앨리스는 공작부인의 집을 떠나 체셔 고양이를 만난 뒤 미친 다과회가 벌어지는 3월 토끼의 집에 간다. 그 집 나무 아래 식탁에서 모자장수, 3월 토끼와 겨울잠쥐가 벌이는 이상한 말과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베일리는 해밀튼의 사원수(四元數, quaternion)를 소개한다. 두 개의 성분을 가진 복소수가 평면에서 회전을 나타내므로 3차원 공간의 회전을 나타내기 위해 해밀튼은 세 개의 성분을 가진 수로 오랫동안 노력하였으나 허사였다. 세 성분으로는 여전히 평면의 회전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하 길을 아내와 함께 산책하던 중 해밀튼은 ‘유레카!’를 외쳤다. 성분 하나를 추가하여 4개의 성분 a,b,c,d를 갖는 사원수 q=a+bi+cj+dk 는 공간의 회전을 멋지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4번째 성분을 시간으로 해석했다.

사원수의 유별난 성질은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원수의 곱하기에서 q1×q2 는 q2×q1 과 같지 않다. 예를 들어 i×j=-j×i=k 이다. 자연수의 교환법칙을 교리로 신봉하는 도지슨은 이런 성질에 진저리 났는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곳곳에 유별난 대화를 써넣었다.
“고양이가 박쥐를 잡아먹나?” 아니면 “박쥐가 고양이를 잡아먹나?”
“알다시피 개는 화가 나면 으르렁대고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지. 그런데 나(체셔 고양이)는 기분이 좋으면 으르렁대고 화가 나면 꼬리를 흔들어.”
“어머! 웃음 없는 고양이는 많이 봤는데 고양이 없는 웃음이라니!”
“그럼 생각한 걸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해”, “그렇게 하는데요. 적어도 말하는 그대로 생각해요……그게 그거죠.”
“’나는 내가 먹는 것을 본다’와 ‘나는 내가 본 것을 먹는다’가 같은 뜻이라는 거잖아!”
“네 말대로라면 ‘나는 내가 가진 것이 마음에 든다’와 ‘나는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을 가진다’가 같은 뜻이라는 거네!”
“네 말대로라면 ‘나는 잘 때 숨을 쉰다’와 ‘나는 숨을 쉴 때 잔다’가 같은 뜻이로군!”

베일리는 번역본에서 다과회로 번역된 모자장수의 티파티는 ‘t-party’ 로 볼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 t 는 사원수의 time 을 뜻한다는 말이다. 앨리스가 오기 전에 다과회를 시작한 3명(모자장수, 3월 토끼, 겨울잠쥐)이 사원수의 세 성분을 대표한다고 보면 마지막 성분인 시간이 안 보인다. 사실은 지난 3월 모자장수와 싸운 시간은 화가 나서 모자장수가 시키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계는 항상 6시에 머물러 있다. 이때문에 해밀튼이 사원수를 발견하기 이전에 세 성분이 평면의 회전 밖에 표현할 수 없던 것처럼 식탁 주위를 뱅뱅 돌며 자리만 계속 옮겨 앉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챕터가 끝날 무렵 모자장수와 3월 토끼는 겨울잠쥐를 찻주전자에 쑤셔 넣으려 한다. 사원수의 세 성분으로는 공간에서 회전 만 되므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겨울잠쥐를 처분해야 한다. 그러면 모자장수와 3월 토끼는 복소수로 자유롭게 존재하여 다과회를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시간의 부재로 인과관계가 깨진 3월 토끼의 집에서는 미친 모자장수의 최대난제 수수께끼 (갈까마귀와 책상이 비슷한 이유)가 자생하고야 말았다.

거기서 새 수학에 대한 도지슨의 풍자는 끝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이러한 수학적인 풍자를 뺀 원래의 원고 ‘앨리스의 땅속 모험’은 매력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특유의 난센스가 결핍된 동화책일 뿐이다. 하지만 수학적 풍자가 더해진 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전이 되었다.

베일리가 자신의 주장을 처음 발표했을 때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를 포함한 루이스 캐롤 전문가들(Carrollians)은 전적으로 반대하였다. 도지슨이 그의 옥스포드 동료들과 19세기의 새 수학을 풍자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사영기하학, 기호대수학, 사원수를 이용한 해석에 근거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New York Times, National Public Radio, BBC, Mathematical Association of America 등의 언론들이 베일리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들이 그에 호응하여 이런 기사들을 자기 홈페이지에 옮겨 실었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쌓아올린 기존의 지식과 관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관한 신선한 해석이 나타난 것을 적극 환영하고 책의 세계가 더 넓어졌음에 즐거워했다.

지금까지 베일리의 의견을 소개하였는데 이제는 필자의 견해를 조금 적어보고자 한다. 이미 도지슨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좋아하는 수학자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다음과 같은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드모르간이 산술(arithmetic)을 논리화, 상징화 하여 기호대수학을 탄생시킨 것 같이, 독일의 수학자 힐버트는 자연현상을 가장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철저하게 공리화 하였다. 유클리드는 그의 기하학을 점, 선, 면 등의 용어와 누가 봐도 자명한 평행선 공리를 포함한 다섯 공리를 기초로 하여 쌓아 올렸다. “점은 위치만 있고 부분이 없는 것이다”. 즉 넓이가 없다. “선은 길이만 있고 폭은 없는 것이다”. 유클리드는 이렇게 용어 점, 선, 면을 직관적으로 설명하였으나, 1899년 힐버트는 그의 저서 ‘기하학의 기초’에서 점, 선, 면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무정의(無定義) 용어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점, 선, 면’ 대신에 각각 ‘책상, 의자, 맥주잔’이라고 불러도 아무 모순이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기하학은 무정의 용어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이지 무정의 용어가 무엇이냐 라는 문제와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하학의 첫째 공리 ‘두 점은 한 직선을 결정한다’를 ‘두 책상은 한 의자를 결정한다’로 바꿔도 좋다고 말할 수 있다. 힐버트가 이러한 이론을 발표하기 1년 전에 도지슨은 죽었다. 만약 그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쓰기 전에 힐버트의 이론을 알았다면 이 동화책은 적어도 한 챕터가 늘어났을 것이다. 앨리스는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 할 뿐 아니라 새 챕터에서 앨리스는 애벌레가 되고, 체셔 고양이가 되었다가 하트 여왕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앨리스가 3월 토끼의 집에 들어가니 모자장수, 3월 토끼와 겨울잠쥐는 외쳤다. “자리 없어! 자리 없어!” “자리 많은데요!” 앨리스는 분해서 이렇게 외치고는 안락의자에 앉는다. “포도주 좀 마셔봐.” 3월 토끼가 권했다. “포도주는 안 보이는데요.” “포도주 없어.” 3월 토끼가 말했다. “그런데도 포도주를 권하는 건 예의에 아주 어긋나는 일이에요.” 앨리스가 화를 내며 말했다. “앉으라고 하지 않았는데 앉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지.” 3월 토끼가 말했다.

이상의 대화를 듣다보면 간단한 명제논리가 떠오른다. 명제 ‘P이면 Q이다’와 명제 P가 참일 때 ‘P가 아니면 Q이다’도 참이고 ‘P가 아니면 Q가 아니다’도 참이다. 즉 전제가 거짓일 때 해당 명제는 항상 참이다. 자리 없다고 말했지만 자리가 있으니, 앉으라고 하지 않았는데 앉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지 않고, (포도주가 있다면) 포도주 좀 마셔보라고 말했으니 포도주가 없는데 권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앨리스와 3월 토끼는 더 이상 무례의 논란 없이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모자장수는 앨리스에게 수수께끼 하나를 낸다. “갈까마귀와 책상이 왜 비슷하게?” 이 수수께끼에 대하여 앨리스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다. 모자장수와 3월 토끼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앨리스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유명한 수수께끼에 제각각 답을 찾고 있다. 여러 독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Lewis Carroll 은 "Because it can produce a few notes, though they are very flat; and it is never put with the wrong end in front!" 라는 애매한 답을 내놓았지만 사람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출판되기 20년 전에 미국 시인 Edgar Allan Poe 가 쓴 명시 「갈까마귀 (The Raven)」과 관련해 답을 냈다: “Poe 는 이 둘에 관해서 작품을 썼다”. 필자도 답을 내보고 싶다. 에스키모 신화에 갈까마귀는 지구의 모든 생명과 인간을 창조하였다. 갈까마귀는 인간에게 집과 카약을 만드는 법,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다. 책상은 작가의 책상이다. 작가는 많은 시와 소설을 책상에서 쓴다. 그러므로 “갈까마귀와 책상은 창조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공작부인의 아기가 앨리스의 품에서 돼지로 변한 것을 두고 베일리는 사영기하학의 연속성 원리로 원이 포물선으로 변할 수 있듯 바뀐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별로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널리 알려졌듯이 도넛과 커피잔은 위상동형(기하학적 물체를 찢거나 붙이지 않고 구부리거나 늘이면서 다른 형태로 변형하는 것)의 관점에서 같다고 설명하는 게 낫다. 다만 수학자 포앙카레가 위상동형 개념을 정의한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 30년 후였다는 사소한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사람이 동물로, 식물이 인간으로 변하는 얘기가 신화 뿐 아니라 동화책에도 수없이 나오므로 이 경우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또한 처음 앨리스가 토끼굴에서 지하의 방에 떨어졌을 때 키가 작아졌다가 목이 늘어나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자 자신이 변한 게 아닌지 확인하려고 구구단을 외워보았다. “4 곱하기 5는 12, 4 곱하기 6은 13……” 이런 계산을 이해해 보기 위해 베일리는 앨리스가 10진법이 아닌 다른 진법으로 계산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굳이 하지 않는 게 낫다. 이때 앨리스가 잠시나마 멍청해진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곧 기억력을 확인하기 위해 한 말이 “런던은 파리의 수도이고 파리는 로마의 수도이고……” 였으므로.

수학의 집합론 창시자 칸토르는 자연수의 개수가 유리수의 개수와 같고 실수의 개수는 더 많다고 보였다. 이렇게 무한의 크기도 서로 다르다는 혁명적인 주장을 하자 수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에 칸토르가 항변하였다: “수학의 본질은 자유에 있다.” 이 말은 그의 묘비명에도 쓰였다. 이에 덧붙여 말하자면 수학의 두 가지 특성은 ‘자유와 엄밀’이다. 논리의 엄밀함이 없이 수학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그 엄밀함이 문학과 예술 속에 나오는 수학에는 꼭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앨리스 한테 벌어진 일들에 사영기하학과 구구단을 엄밀하게 적용할 필요가 없듯이. 그러나 수학의 자유가 문학과 예술에는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유에서 창조가 꽃피우며 상상력이 뻗어 나기 때문이다. 새 수학은 자유로움에서 움트며, 자유로운 예술가만이 진정한 작품을 창조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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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몇 해전에 중편소설 「디도의 딸」을 썼는데 여기서 무의식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수학자 주인공 서혁은 도봉산 절벽에서 뛰어내려 앨리스처럼 상당한 높이를 낙하한 끝에 선인세계에 도착한다. 거기서 시시포스와 수학자 아벨(1802-1829)과 소설가 카프카(1883-1924)를 만난다. 이들과 환상적인 교류를 한 뒤 서혁은 앨리스와 다른 방법으로 현실로 귀환한다.


대한수학회소식(2022년 3월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