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여름 학회


2015년 7월 중순 나는 영국 런던에 도착하였다. 30년 전 대학원생 시절 지도교수를 따라 스톡홀름과 빠리를 석 달 간 방문한 뒤 미국으로 돌아갈 때 2박3일로 잠깐 들른 때를 제외하면 처음 방문해보는 도시였다. 히드로 공항에선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없어 입국수속을 기다리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튜브라는 지하철은 너무 좁았고, 4성 호텔 방은 손바닥 만했다. 피곤함을 무기로 첫날밤은 그럭저럭 잠을 잤고 다음날 아침은 호텔 식당에서 평범한 식사로 허기를 때웠다. 그리고 거기서 뜻밖에 Rob을 만났다. 그와는 대학원 입학동기이며 지도교수가 같으니 학문적 형제이다. 대학원 첫해 미분다양체 과목을 수강할 때 그는 벌써 그 과목의 조교가 되어서 내 숙제를 친절히 채점해주곤 했다. 그도 이미 결혼했었는데 아내는 부모가 한국인, 일본인으로 성이 김씨였다. Rob은 자기 아들이 한 달 전 결혼했다고 해서 나는 몇 달 후 첫 손녀가 태어난다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의기투합해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으로 향했다. 템즈 강변에 있는 글로브 극장은 셰익스피어 시절의 극장 분위기를 살리고 있으며 중앙 지붕이 없는 원형의 극장이다. 오늘 공연은 ‘리차드 2세’였다. 리차드 왕이 사촌을 탄압하니까 그가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빼앗는 스토리의 연극이다. 왕권찬탈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

2015년은 지도교수 Rick이 예순 다섯이 되는 해여서 그의 제자들은 오랫동안 준비하여 런던과 워릭에서 기념학회를 개최하였다. 배출한 제자가 38명이나 되어서 우선 제자들 위주로 런던의 임피리얼 칼리지에서 기념워크샵을 열고, 곧이어 워릭대학에서 정식 기념학회를 개최키로 하였다. 영국에서 기념학회를 연 배경에는 Rick의 첫 제자 Mario가 워릭에 있기 때문이다. Mario는 아들이 4명이며 벌써 손녀가 여럿이 된다고 했다. 30년 전 Mario 부부가 장기 방문차 두 아들과 샌디에고 공항에 도착할 때 내가 마중 나갔었다. 그들은 내 차가 폭스바겐 풍뎅이인 것을 보고 걱정이 태산 같았으나 그들 네 가족과 많은 짐이 좁은 차 안에 억지로 나마 들어갈 수 있게 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난다. 이 이야기를 Mario 아내가 이번에도 꺼내서 같이 배꼽을 잡았다.

며칠 후 Rob과 나는 영빅이라는 극장에서 카프카의 연극 ‘소송’을 보았다. 지도교수 Rick 부부가 며칠 전 봤다며 추천한 것이다. 소설 소송은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연극은 특이한 무대장치로 소설의 초현실성을 잘 살려주었다. 연극관람 후 Rob과 나는 런던 거리를 걸어다녔다. 우리는 결국 13키로를 걸었는데 서로 걷기를 좋아하고 같이 걸으며 나눌 수학 얘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Rob 에게 사과를 주었더니 사과를 좋아하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며 가족 이야기를 줄줄이 꺼내는 것이었다. Rob은 아버지가 병원에서 치료를 하다가 중단했는데 열흘 뒤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몰라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대화할 소중한 기회를 놓친 것을 Rob은 아직도 가슴 아파하였다.

임피리얼 칼리지 워크샵에서 한 제자가 발표할 때 첫 인사말로 남자가 결혼하면 아내의 가족들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학생이 지도교수를 선택하면 그의 다른 제자들을 맞이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워크샵에서 제자들 모두가 발표하며 옛 정을 서로 나누고, 새로 알게 된 제자들과는 식사를 같이 하며 가까워지는 기회를 만들었다. 일주일 후 우리는 워릭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런던의 날씨는 시원했는데 워릭의 날씨는 써늘했다. 워릭 기념학회에는 대가들 위주로 연사를 초청하였다. Rick 에게는 두 명의 지도교수, Leon Simon 과 Yau 가 있었다. Yau 는 첫 강연에서 말하길 Rick, Leon 과 스탠포드 수학과 건물 2층에서 같이 지냈는데 Rick 은 곧 자기의 teacher 가 됐다고 하였다. Yau는 강연 끝에 송나라 시인의 시를 첨삭하여 Rick 을 축하하는 시를 발표하였다. 학회 마지막 날 끝 강연에서 Leon 은 Rick 과 Yau 옆에서 이들이 대가가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고 회고하였다.

첫날 모든 강연이 끝나고 10명의 학회참가자들은 Mario 가 운전하는 미니버스를 타고 30분을 이동하여 인근 도시 Stratford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셰익스피어가 탄생한 마을인데 Royal Shakespeare Company 가 있다. 여기서 연극’ 베니스의 상인’을 관람하기 위해 우리는 온 것이다. Rob은 유태인을 박해하는 내용으로 유명한 이 연극이 전부터 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Rick 은 중학교 3학년 때 베니스의 상인을 원본으로 읽었다며 우리 앞에서 몇 구절을 암송하였다. 그 중에 하나가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이었다. 과연 유태인 학대 장면은 대단하였다. 샤일록에게 상대 배우가 3,4번 얼굴에 직접 침을 뱉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일품이었고 발성과 발음은 뛰어났다. 그래도 근대 영어의 연극대사는 나뿐 아니라 미국인들도 알아듣기 힘들어했다.

학회를 하루 남긴 날 오후 우리는 영국에서 오래된 성 중의 하나인 Warwick Castle 로 소풍을 갔다. 워릭 성의 성주는 불란서의 영웅 소녀 잔 다르크를 화형하였다고 전해진다. 성 안에서 투석기의 모형을 보았는데 사정거리는 600미터라고 한다. 성 근처로 투석기를 옮겨가면 대개 성 안의 주민들은 항복을 했다고 한다. 투석기 제조에는 왕의 1년 수입의 1/30 이 들었다고 한다. 워릭 성의 중앙 홀에서 우리는 연회를 하며 저녁을 들었다. 120 명이 12개의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18만원 가격의 식사를 하였다. 학회비용을 모금할 때 식사비용까지 포함하는 찬조비를 우리는 얻어냈던 것이다. 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Rick 의 첫 제자들인 Mario 와 나는 간단한 스피치를 하였다. “내 성 CHOE 가 Rick 의 성 SCHOEN 의 일부인 것처럼 그의 수학은 내 수학의 기초가 되었다. 나는 Rick 과 같이 정기적으로 조깅을 하였는데 뛰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았으나 조깅할 때 수학 얘기를 같이 해야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하였다. 이어서 나는 준비한 영시를 낭독하였다

to Rick

We learned geometry from you in California
Like the disciples in Greek academia

Out of your a priori estimates
grew our a posteriori theses

Through your seminars we acquired mathematical freedom
Now we fly high and free as you taught us to

Life is short
Mathematics is long

Gaps are easy to find
Key lemmas hard to prove

But we know over the quagmire there are beautiful theorems
Over the rainbow there exist wisdoms of life

Rob 은 6,70 년대 월남전 뉴스에서 quagmire 라는 단어를 자주 들었는데 시에서 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Rick은 quagmire 가 Jaigyoung 이 애용하는 단어라고 하였다. Rick 과 함께 등주부등식을 연구할 때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내가 쓰곤 하던 말인 것이다. 한 학문적 여동생은 내 시가 좋아서 남편에게도 보여줬다고 하며, 시를 쓰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냐고 물었다. 한 달 걸렸다고 나는 답하였다.

나는 대학원에 들어갈 때 대수학을 전공하려고 했으나 첫해에 미분다양체 과목을 듣고 나서 기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내 얘기를 들은 최형인 선배(서울대 교수)가 그 당시 젊고 활발한 Rick 을 지도교수로 추천하였다. 그래서 그의 토픽스 과목 시간에 한번 들어가 봤더니 몇몇 교수들과 많은 학생들로 강의실이 꽉 차있었다. 그런데 강의내용이 Schauder 이론이었다. Schauder 의 a priori estimates 는 내가 들어보니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 내용은 내게 너무 해석적이어서 의미를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십 여년 후 내 불평을 전해들은 Rick 은 Schauder theory 에는 기하학적인 풍미도 있다고 내게 강변을 하였으나 나는 여전히 내 좁은 취향의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a priori estimate, 선험적 추정값이라는 철학적인 이름은 내 맘에 쏙 들었다. 편미분 방정식의 해가 존재하는지도 아직 모르는데 그 해의 성질을 감히 논할 수 있다니!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확실성을 보장해주는 선험적인 것의 매력은 수학에서도 보기 드문 것이 아닌가? 한편 경험에 근거해서만 참으로 판단가능한 후험적인 것, a posteriori 라는 것은 대학원생 시절의 정수를 꼬집어 얘기하는 말이 아닐까? 학위논문 문제를 풀면서 좌충우돌하며 진리로 서서히 접근하는 대학원생들의 삶은 다분히 a posteriori 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Schauder 는 a priori estimates 를 써서 타원적 선형편미분방정식의 해의 존재성을 보였다. 그리고 Leray 와 함께 무한차원 바나하 공간에 Leray-Schauder degree를 도입하여 준선형 편미분방정식의 해가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Schauder 는 1899년 폴란드 Lwow 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유태인인데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Schauder 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에 징집돼 1차대전에 참전하였지만 곧 이태리에서 포로가 되었다. 폴란드에 돌아온 그는 대학에 들어가고 1923년 Steinhaus 의 제자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이후 Schauder 는 상당기간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하였고 1929년 수학과 후배 유태인 여학생과 결혼하였다. 1930년 바나하 공간에서 fixed point theorem 을 증명하였는데 그의 우수한 능력을 알아본 주위의 추천으로 록펠러 스칼라십을 받았고, 이 덕분에 라이프찌히와 빠리를 연구차 수년간 방문하였다. 그리고 빠리에서 Leray 와 공동연구를 하며 쓴 1934년의 논문(Topologie et equations fonctionnelles)으로 Malaxa Prize를 공동수상하였다.

1939년2차대전이 발발하여 Lwow 를 러시아가 점령하였는데 우호적인 시류를 타고 Schauder 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2년 후 Lwow에 침공한 독일군은 조직적인 유태인 말살정책을 강력 시행하였고 Schauder는 졸지에 도피생활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남의 집 침대 밑에 숨어 지내던 Schauder는 가끔 거리를 돌아다니곤 했다. 주위 친구들은 그가 유태인 같은 얼굴로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렸으나 그는 스스로 아리안족을 닮았다 말했다고 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Schauder는 스위스의 수학자 홉프에게 편지를 써서 도움을 요청했고,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에게도 접촉을 시도하였다고 한다. 홉프에게 말하길 Schauder 는 자기가 최근에 좋은 결과를 많이 냈으나 종이가 없는 등 여건이 안 좋아 논문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도피처에서 목욕을 하지 못해 친구의 공장에서 몰래 하기로 했던 Schauder 는 그 며칠 전 거리에서 독일군에 체포되었다. 유태인 말살캠프로 이송 중 탈출을 시도한 schauder 는 독일군의 총격을 받고 즉사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내도 결국 죽음을 면치 못했지만 그의 딸은 수녀원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이태리에서 교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셰익스피어 시대에도 유태인 배척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 유럽에는 결국 20세기에 유태인 말살이라는 역사적 대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나는 Schauder theory 는 비록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Schauder 주위의 몇몇 지인이 남긴 회고록을 자세히 읽으며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공감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스스로를 달래보곤 한다.

워릭 학회 마지막 날 끝 시간 강연을 시작할 때 Leon Simon은 Rob 의 부탁으로 그의 시를 칠판에 대신 써주고 시작하였다. 나중에 Rob 은 내 영향을 받아 쓴 시라고 나에게 말하였다. 수학자들의 모임에서 연극 관람과 시 낭송이 다반사였던 기억에 남는 학회였다.

대한수학회 소식지(2018년 1월호)